그들은 소풍처럼 피난을 떠났을 뿐이었다
“어르신, 진지 드셨습니까.” 동네 어귀, 바둑 삼매경에 빠진 동네 어르신들을 지나칠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꼬박 안부 인사를 건넨다. 진짜 진지를 드셨는지 여부를 여쭙는 것이 아니라, 그건 인사말, 즉 일상의 리추얼(의식)이다. 전쟁이 났다지만, 그들의 일상은 여느 때와 크게 다름이 없다. 걱정을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 박사님’(이승만)도 있고, 미군도 있다. 산골짜기에서 농사짓는데, 어찌 될거나 있나, 하는 소박한 마음. 전쟁은 그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풍문이었다. 일상에 균열을 일으킬 만큼의 큰 사건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전쟁은 엉뚱한 곳에서 발발한다. 미군이 일본말 안내방송을 통해 피난가라고 할 때만 해도 산골짜기에 한 며칠 박혀있으면 될 줄 알았다. 소풍 가듯 피난을 떠났다. 임진..
2010.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