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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국영이 형, 제 맘보춤 봐 주실래요?

by 낭만_커피 2008. 4. 1.

4월1일. 오늘, 오랜만에 형을 만났네요. 무척 반가웠어요. 사실, 오늘은 만우절보다 형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날이에요. 벌써 5년. 형의 소식을 접한 그날의 영상도 뚜렷하네요.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그날, 비가 추적추적 나리던 날. TV를 통해 형의 소식을 들었었는데... 믿기지 않을 법 했죠. 하필 만우절이었으니까. 거짓말 같은 죽음이라고 하더군요. 맞아요. 나도, 긴가 민가 했으니까.

더구나, 오늘은 더 특별했어요. 왜냐구요? 형을 스크린을 통해 만났잖아요.^^ '5주기' 딱지를 붙이니, 사람들도 더 애틋했나봐요. 형이 나온 <아비정전>(1990)과 <해피투게더>(1998)가 형의 기일에 맞춰 재개봉 했거든요. 저라고 빠질 순 없잖아요. 그래서 오늘 <아비정전>이 재개봉한 첫날 첫타임, 형을 만나기 위해 냉큼 준비를 했죠. 두 편이 각각 형의 20여년, 10여년 전 모습을 담고 있으니, 형도 감개무량하죠? 이렇게 오랜 세월을 버티면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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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기다렸던 건, <아비정전>을 마침내 스크린을 통해 보게 된다는 것 때문이었어요. 수차례 보고 또 봤지만, 개봉 당시에 전 스크린을 통해 보질 못했거든요. 당시 전 고딩이었고, 특히나 영화가 환불 소동까지 빚으면서 문전박대를 당한 터라, 일찌감치 내려간 탓이었어요.

어쨌든, 설레는 맘을 품고 찾아간 스폰지하우스 광화문. 첫타임인데도, 사람들이 꽤 있더라구요. 특히 40대 아주머니 군단(?)이 형을 보기 위해 몰려와 있더라구요. 와, 놀랐어요. 재개봉에 맞춰, 아주머니들이 저렇게 단체로 오실 줄이야. 형이 한창 날리던 시절에, 청춘을 함께 관통한 팬들이었겠죠? ^^ 기분이 더 업된 건, 포스터도 하나 받았다는 거에요. <해피투게더> 포스터는 갖고 있지만, <아비정전>도 하나 꼭 품고 싶었거든요. 재개봉에 맞춰 새로이 제작된 포스터여서, 더욱 감회어렸달까. 여튼 극장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형의 살아생전 모습을 보기 위해 스크린을 주목하고 있었고, 저 역시 그 대열에 동참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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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스크린이 열리는 순간, 형이 걸어나오더라구요. 아, 아비의 그 발걸음을 보는 순간, 뭉클뭉클했어요. 콜라 한병을 툭 까면서, 수리진(장만옥)에게 첫 수작을 걸던 그때. "오늘밤 우리는 꿈에서 만나게 될 거요"라는 멘트로 여운을 남기고, 다음날엔, 수리진과 1분 동안 시계를 함께 보더니,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우리는 함께 했어.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했던 1분을 잊지 않을 거야. 우리 둘만의 소중했던 1분은 이제 지울 수 없는 1분이 됐어. 이미 과거가 됐으니까. 내일 다시 올게.”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 뻔하디 뻔한 작업성 멘트를 극장에서 다시 듣자니, 뭐랄까요. 그냥 찌리릿하더라구요. 천하에 둘도 없을 그 1분 멘트의 감흥. 1분, 고작 60초의 시간에 불과할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박제되겠죠. 그 무엇으로도 표백할 수도 없는. 수리진도 결국 그렇게 읊조리잖아요. "그는 1분을 쉽게 잊겠지만 난 영원히 그를 잊을 수 없었다." 난 생각해요. 형의 그 멘트는 우리에게 거는 주술과도 같은 거라고. 수리진의 독백은 그 멘트를 함께 받은 우리의 심정이고.

맞아요. 상영시간 내내, 나는 주술에 걸린 듯, 스크린만 멍하니 응시했지요. 아비. 돈 좀 가진 룸펜이자 양아치에 너무 많은 여자를 만나서, 누구를 사랑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바람둥이.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사람의 마음 따위 안중에도 없는 나쁜 남자. 그럼에도, 여자들은 하나같이 아비를 잊지 못해 눈물을 짜내고.

그런데 그런데 말이에요. 형은 왜 그렇게 아름다운지. 그냥 아름다움 그 자체였어요. 카메라가 형의 얼굴을 향할 때마다 묻어나는 형의 아름다움은 진짜 영원히 박제하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키더라구요. 웃음 한번 제대로 웃지 않는 형의 모습. 아름다움과 함께 전시된 그 고독함. 빗으로 머리를 쓸어올리는 형의 그 모습에선, 형이 고독을 쓸어버리고자 하는 것 같았어요. 제 기억으론 3차례 그렇게 빗을 쓸어올리더군요.

사람들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며, 죽음 따윈 대수롭지 않은 것인양, 말하는 형의 모습에선, 글쎄요. 형이 혹시 구름의 저편으로 가는 날에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싶더라구요. 아비가 떠나는 모습에선, 5년 전 오늘이 떠올랐구요. 여전히 믿기질 않았어요. 형도 그냥 영화에서처럼 눈을 감은 것이 아닐까하고.

스크린을 통해 본 <아비정전>. 형을 본 것도 좋았지만, (장)만옥 누나, (유)가령 누나, (장)학우 형, (유)덕화 형, (양)조위 형까지, 거의 종합선물세트였어요. 20여년 전의 그들을 다시 스크린을 통해 보는 이런 호사.

와, 그러고보니, 형이 살아있다면, 한국 나이론 벌써 53살이에요. 설운도 아저씨보다 2살이나 많다면서요? 그런데 형은 아저씨라고 부르기가 싫어요. 왜일까요. 하하. 그리곤 결심했어요. 저도 그 어느해, 4월16일 3시에 홍콩무역체육관을 찾기로. 그 1분 멘트를 찾아서. 음, 아마 난 오늘 밤에 거울을 보면서 형의 맘보춤을 따라해 볼거에요. 물론 형의 그 자태는 나오질 않겠지만. 제 맘보춤이 어떤지 그곳에서도 한번 봐주세요. 그냥, 오늘 하루만은 그렇게 해보려구요. 하하.

형, 형, 국영이 형, 잘 있는거죠? 그냥 보고 싶어요. 그게 다에요... 이만 줄여요. 내년에 또 봐요...

P.S.. 아, 참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마지막에 조위 형이 나와서 그 좁은 다락방 같은 곳에서 담배도 꼬나물고, 뭔가 준비를 하잖아요. 그리고 형의 그 빗질을 따라하는데. 그거 아마 <아비정전> 2탄이 나오려고 그랬던 건가요? 다른, 그러나 같은 '아비'를 조위 형이 연기하는? 제 추측이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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