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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Own Coffeestory/밤9시의 커피

[밤9시의 커피] 6월25일의 커피, You are not alone

by 낭만_커피 2012. 6. 26.

 

영원이란,

아침에 커피 한 잔을 추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6월25일은 어쩔 수 없다. 마이클 잭슨이다.

아침 오픈할 때부터 마이클 잭슨이 흘러나오게 해야 한다. 

그냥 자동이다. 내 마음보다 손이 먼저 마이클을 찾고 귀가 원한다.

3년 전 그날, 그랬었고, 작년에도 그랬더니,

올해도 마이클 잭슨을 만나기 위한 손님이 찾아오니까. 

 

아침, 그 여자 손님이 찾아왔다. 

6월25일, 특별히 휴가를 냈단다. 하긴 그녀, 작년에도 그랬다.

이 여자, 우리 가게의 특성을 안다.ㅎㅎ

오늘, 마이클이 흘러나올 것을 짐작한 거다. 센스쟁이!

나이를 묻지 않았지만, 나보다 약간 나이가 많은 것도 같다. 

검은 옷을 입었다. 한마디로, 멋지다. 아우라나 포스, 장난 아니다.

 

"마이클, 잘 지내고 있을까요?" 

물론, 그렇게 말하면서 특별한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저 인삿말이다.

 

"좋아하고 있을 것 같아요. 몇 달 전에 휘트니가 합류했잖아요."

 

싱긋 웃는다. 아, 그렇지. 휘트니 휴스턴. 2월11일이었지. 역시 한 시대를 접은 동시대의 슈퍼스타. 영국의 한 매체는 두 사람이 한때 결혼까지 꿈꿨던 연인이었다는, 믿거나 말거나를 보도하기도 했었다.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세기의 두 팝스타가 천상을 아름다운 선율로 가꾸고 있을 거라는 그녀의 말. 센스 돋는다.

 

"하하, 그러게요. 하늘이 특별히 두 목소리의 앙상블을 원했나 봐요. 듣고 싶은 마이클 있어요?"  

 

"그냥, 마이클이면 돼요. 충분해요."

 

커피를 내렸다. 오늘 같은 날, 그녀는 주문이 필요없음을 안다.

내가 알아서 스페셜 커피를 내려줄 것을 안다. 단골과 주인장 사이의 신호다.

 

마침 나온 노래가 'Heal The World'.

나의 선택은, 어제 특별히 공정무역 커피들로 블렌딩한 힐링 커피. 졸졸졸. 

검은 눈물이다. 세계를 걱정하고 지구를 사랑했던 마이클의 눈물 모아. 

향이 유난히 진하다. 액은 더더욱 검다. 그녀 앞에 살포시 내려놓는다. 

 

향을 음미하는 그녀, 입을 연다.     

"아저씨~ 엑설런트." 엄지를 들어준다.  

 

아무렴, 커피 맛도 모르는 입이 입인가. 나도 그녀의 탁월한 미각에 엄지로 화답해준다.

 

 

누군가는 마이클 잭슨 코스프레를 입고선 커피를 마시러 왔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잠시 짬을 내 공연을 하겠다며, 마이클의 춤을 선보이고 갔다.

한 무리는 마이클 잭슨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렇게 오늘은 마이클 잭슨으로 가득했던 이 공간.

 

밤 9시가 넘었다.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유작 앨범이 된 [This Is It]을 튼다.   

2CD 디럭스 에디션의 두 번째 디스크에 있는, 마이클이 직접 짓고 낭송한 詩 . 처음과 끝부분, 이런 말이 흐른다. 

  

"Planet Earth, my home, my place 작은 행성 지구, 나의 고향, 나의 공간 (...) Planet Earth, gentle and blue 작은 행성 지구, 온화하고 푸르다. 

With all my heart, I Love You 나의 온 마음을 담아, 사랑해."

 

마이클이 살아 있었다면,

이 무슨 손발 오글와글 거리는 낭송이자 고백이냐고 지청구를 늘어놓겠지만,

3년 전 그날 이후, 도저히, 차마, 그럴 수가 없다.

그건 마이클의 명백한 진심이라고 찰떡처럼 믿고야 만다.

With all my heart!

 

스캔들 혹은 독설적 가십이 난무하고,
오해와 조롱 섞인 언사들이 증식한 것도 사실이고, 

팝의 황제라는 그의 커리어가 계속 내리막을 걸은 것도 사실이지만,
느닷없는 죽음으로 인해 마이클은 여전히 슈퍼스타임을 입증했다. 

물론 그는 대중의 오해와 편견에 고통 받은 슈퍼스타였었다.

슈퍼스타의 필요충분조건이 있다. 즉, 개인의 죽음이 한 시대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도 슈퍼스타만이 향유할 수 있는 특권. 한 시대가 고스란히 막을 내렸던 마이클의 죽음이었다.

 

6월25일.

민족의 비극, 6·25인데,

나는 반공세대로 길들여졌음에도, 

3년 전부터, 6월25일을 슈퍼스타 마이클 잭슨이 승천한 날로 기억한다. (내 어린 날의 핀업걸, <미녀삼총사> 파라 포셋이 함께 눈을 감은. ㅠ.ㅠ)

못돼 먹은 놈이라고 욕 들어도 할 말 없다.

  

9시 됐을 때, 문 앞에 써 붙였다. "혼자 온 손님만 받습니다."

당연히 주인장의 제멋대로 신공. 싱글 천국, 커플 지옥.

  

혼자 온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온다.

쉿, 아무말도 필요없다. 자리에만 앉으라고 권했다. 웃는 낯으로. 

따로 주문이 필요없다고 했다. 드리겠다고. 

꾸준히 들어온다.

이 도시엔, 이 마을엔 혼자인 사람도 꽤 있다. 물론 이 시간, 혼자이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들을 위해 준비한 스페셜 커피 레시피, 'You are not alone'.

말 없이 외로운 밤 9시, 오롯이 외로운 당신만을 위해 준비했다. 

당신만의 외로움을 품은 커피 한 잔, You are not alone.

다 함께 외로운 밤 9시의 커피, 그래서 당신과 나, 외롭지 않다. 

커피 한 잔이 당신과 나를 연결해 주니까. :)

 

계속 나는 커피를 내렸다. 외로워도 외롭지 않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6월25일 밤 9시의 커피는 그렇게 외로움을 똑똑 떨어트리고 있었다.

나는 영원을 추출하고 있는 것이다. 영원히 슈퍼스타로 남을 마이클을 추모하며.

 

마이클, 당신이 외롭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당신이 그립거든요. ㅠ,ㅠ

마이클, 정말 최고였어요!

잘 지내나요, 당신?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