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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Own Coffeestory/동티모르 커피로드

[동티모르 커피로드] (프롤로그) 나는 너무 많이 먹고, 너무 적게 움직인다!

by 낭만_커피 2011. 10. 16.

오늘, '세계 식량의 날'이다.

누군가는 요즘 누가 못 먹는 사람 있어?, 하고 쉽게 말한다. 먹을 것, 정확하게는 못 먹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시대라지만, 그건 수사이거나 거짓말이다.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 차고 넘친다. 


세계 식량의 날 올해의 주제는 '식량가격- 위기에서 안정으로'인데, 식량'가격'의 위기만 있는 게 아니다. 식품 값이 오른다고 아우성 치는 것, 기아의 골이 깊어진 것을 놓고 표면적으로는 기상이변과 자연재해를 이유로 든다.

이밖에 중국, 인도 등의 경제개발·성장에 따른 농지 소멸과 육류소비 증가, 허울  좋은 바이오연료 생산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더 크고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식량을 투기의 대상으로 보는 다국적 농식품기업들과 자본의 패악질이다. 농식품복합업체들은 농수산물 생산부터 유통까지 지배함으로써 식량독점을 꾀하고, 투기자본은 국제곡물시장에 적극 개입해 가격을 폭등시켰다. 
거기엔 북반구 정부와 세계기구의 정치적 무능함 혹은 협잡도 함께 한다.

한마디로 먹는 것 갖고 각자의 이권을 챙기고자 장난 치는 '신성동맹'의 탐욕이 위기의 골을 더욱 깊어지게 만들고 있다. 허구헌 날, 기아를 줄이자고 외치면서도 사태를 악화시키는 꼴이 그것을 방증한다. 1996년 세계식량정상회의는 '전 세계 기아인구를 2015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기'로 결의한 바 있으나, 지난 2007년~2008년, 2010년의 식량위기로 기아인구는 8억5000만 명에서 10억2500만 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식량의 위기는 결국 체제의 위기에 다름 아니다. '점령하라(Occupy)'는 구호의 확대와 우리네 99%를 위한 행동은 식량 위기와도 관련을 맺는다. 한 사회의 유지와 개별적인 인간의 실존은, 배를 곪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과거, 나의 인디커피하우스에서 한 예술팀이 알려준 이 말.

"MOST IMPORTANT THING IN THE UNIVERSE IS -> FULL STOMACH"



지금의 식량 위기가 인간이 자행한 일이라면, 이것을 극복하는 일 또한 인간에게 주어진 과제이자, 의무다. 결자해지! 그리하여, 먹을거리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고, 푸드정의(Food Justice)에도 좀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일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나는 커피라는 창을 통해 혹은 먹을거리로 이것에 대한 사유를 푸는 한편으로, 커피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풀겠다. 《미국의 송어낚시》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이 말처럼.  “때때로 인생은 단지 커피 한 잔의 문제, 혹은 커피 한 잔이 가능케 해주는 친밀감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갑자기 어디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인지 궁금한 이 계절, 당신에게 커피 한 잔 권한다. 프롤로그부터 그에 이어지는 몇 편의 이야기는 동티모르 공정무역 커피산지를 탐방한 '동티모르 커피로드' 되겠다. (참고로, 프롤로그는 '윤리적 소비' 공모전에 응모했으나 떨어진 글이다.) 

어느 밤 문득 외롭거든, 삶의 미각에 쓸쓸함이 묻어나거든, 문을 두드리시라. 당신을 위해, 밤9시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 건네겠다. 그래서, 밤9시의 커피다. 커피 한 잔 나눌 당신이 있어서 다행이다. 

[프롤로그] 나는 너무 많이 먹고, 너무 적게 움직인다!                
동티모르 공정무역 커피산지를 가다

 


하얀 커피꽃이 피었다. 빨간색 커피체리가 익었다. 체리의 외피·과육을 벗기고 건조를 위한 사람들의 몸짓도 분주하다. 커피 한 잔을 위해 자연이 내려앉고 인간의 노고가 투입되는 현장이다. 내가 만들고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잉태되는 터전이다. 나는 동티모르 로뚜뚜 마을에 와있다. 공정무역 커피산지다. 비행기를 갈아타고, 동티모르 딜리공항에서도 꼬박 십여 시간 이상 험한 산을 타고서야 도달할 수 있는 산촌의 커피마을.

동티모르의 7월, 커피가 익어가는 계절에 ‘만남’을 가졌다.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우연에 우연이 빚은 산물. 그래,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1927)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사물과 동물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여전히 당신이 휘말릴 수 있는 우연한 일로 가득하다.”

그래, 사실 모든 것이 우연이었다.

제도교육권에서 가장 보통의 신자유주의적 인간으로 사육됐던 나는, 신자유주의적 사이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직장 생활을 꾸역꾸역 감당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서 불어온 바람이었을까.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 됐다. 아니, 커피라는 창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커피를 만들고, 공정무역 커피하우스를 꾸리며, 사회적기업을 공부하면서, 공정무역 커피산지에 발을 디뎠다. 그 모두가 우연이었다.  

많이 궁금했다. 내가 지지고 볶고 추출하는 커피의 근원이.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보고, 상상했을 뿐이었으니까. 태고의 산악이 품은 동티모르에서 내 커피의 근원과 세계의 잇닿아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운이 좋았다. 그곳에 왔다. 숨을 깊이 들이쉰 순간, 느꼈다. 아, 우리는 연결된 존재구나. 동티모르
로뚜뚜에 도달한 순간, 실감했다. 눈 앞에 펼쳐진 모든 것은 커피 한 잔에 담긴 자연이었다. 땅, 햇빛, 바람, 비, 안개, 별 등 대자연을 머금고 자란 커피열매와 그것을 따고 다듬는 사람들. 자연과 땀의 결정이었다.

커피가 어떻게 나오는지 알고 있는가? 나는 이제 확실하게 안다. 하얀 마음과 빨간 열정이 어우러져 갈색의 음료가 나온다. 이방인을 위해 내려준 커피에서 온유한 맛을 느낀 건 그런 이유였나 보다. 커피를 내리는 내 마음이 그 자연을 제대로 담을 수 있을까,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다만 안타까운 일이라면, 기상이변의 비극은 한국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동티모르에도 기상이변이 덮쳤다. 하늘이 뚫린 마냥 10년 만에 최악의 폭우가 닥쳤단다. 아무도 그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하긴 미국과 유럽, 일본, 중국 등에는 눈을 돌려도 누가 동티모르의 비극에 관심이 있을까.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관심이 없다면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것을 알게 된, 운 좋은 한국 사람인 셈이다.

문제는 커피 농사가 흉년이었다. 매년 25~30톤가량 이뤄지던 커피 생산은 1톤으로 팍 줄었다. 자연의 분노는 수시로 인간의 삶을 위협한다. 커피로 생계를 유지하는 자들에게 커피열매가 맺지 못하는 현실은 삶 또한 영글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의 생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후 벌어졌다.

굳이 말을 붙이자면, 공정무역이 지닌 회복탄력성이라고 할까. 공정무역이 단순히 생산자에게 시장가보다 돈 몇 푼 더 쥐어줌으로써 끝나는 체제가 아님은 알고 있었다. 커뮤니티의 유지와 생산자조합(혹은 그룹)의 결성 등 그들이 그들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나누는 것. 전국YMCA연맹에서 파견된 양동화 간사는 5년 여 동안 커피로 동고동락한 사람들의 좌절과 절망을 이해했다.

궁즉통이라고 했다. 공감한다면, 방법이 보인다. 마침, 도서관과 학교 등의 건립이 추진되고 있었고, 이들을 그곳의 자원으로 돌렸다. 공정무역의 진짜 힘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자연의 분노 앞에서도 인간은 겸허해야 한다. 로뚜뚜의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늘을 쉬이 원망하지는 않았다. 기다리고 인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쨌든 한 해 동안, 로뚜뚜 마을 커피향은 약해지겠지만, 몇 년 뒤 책향기가 덧붙여져 로뚜뚜 커피는 더 좋은 품질과 향미로 다가설 것임을, 나는 확신했다.

뭣보다, 커피생산자와 함께 밥을 나눠먹고 커피를 마신 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들과 마주한, 해발 1004m에 자리한 마을사무실(겸 숙소)은 고도 덕분에 ‘천사의 집’이라고 불렸다. 천사가 있다면, 지상에 내려와 커피 한 잔 마시는 휴식처로 쓸 법한 곳에서, 지상의 천사들과 마주 한 시간이었다. 나는 손에 힘주어 그들과 악수를 했으며, 또박또박 이름을 부르며 눈을 보았다. 개별의 인간에게 새겨진 구체적인 존엄이 거기 있었다. 내 커피의 실존과 마주대했다. 감격스러웠다. 
 
물론 그 삶의 실체는 내가 알 수 없는 또 다른 심연이겠지만, 나는 그 구체적 존엄 앞에 겸손해야 했다. 그들은 자연의 일부였고, 나는 그들이 얼마나 대단하고 소중한 일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 커피 덕에 저 멀리 한국의 누군가는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고.


그래, 누군가를 행복하게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가 말이다. 나는 그들 몇몇에게 커피란 당신에게 무엇인지를 물었다. 누군가는 커피는 행복이라면서 웃었고, 다른 누군가는 생각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답했다. 어떤 이는 여자 친구 같다고 했다. 다들 하나 같이 다른 답변, 그래, 그것이 커피다.

나는 당신들이 채집한 커피가 ‘디아’(좋다)하고 ‘가빠쓰’(맛있다)라고 말해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곳은 커피나무를 경작하지 않는다. 플랜테이션 농장 등에서 가꾸는 농사가 아닌 채집이다. 자연이 키워준 것을 때가 되면 채취할 뿐이다. 유기농 그 이상이다. 생두는 튼실하며 빛깔도 좋다. 맛도 뛰어나다. 자연에 대한 고마움과 경이로움을 품은 야생 커피가 지닌 장점이다.

하얀 커피꽃과 빨간 커피체리, 녹색 생두를 잉태하는 자연과 생산자를 만나면서 커피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다짐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커피를 더 정성스레 만들어야겠다. 커피는 곧 마음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그들은 그것을 확인해줬다. 대자연과 생산자의 마음에 커피를 내리고 마시는 사람의 마음이 합쳐진다면, 커피가 그보다 맛있을 수 있을라고! 공정무역 커피는 그런 ‘만남’과 ‘관계’속에서 빛을 발한다.

 
윤리적소비는 별다른 게 아니다. 내가 먹는 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온 것인지 아는 것. 그래서 세계가 연결돼 있음을 깨닫고, 고마움을 가지는 것. 협동조합운동이 양이나 이물질 포함여부를 속이지 않음에서 시작한 것은, 마음을 담았다는 말이다. 좋은 커피에 가급적 화학첨가물을 섞지 않고, 유기농을 고집하는 우리 커피하우스의 노력은 당연한 의무다.

그들의 노동과 실존을 마주하면서 지금 내 생존의 윤리를 생각했다. 아, 나는 너무 많이 먹고, 너무 적게 움직이는구나. 조금 덜 먹고, 더 움직이자. (물론 커피는 많이 마셔도 된다!) 요즘 내가 만든 커피 한 잔에 담긴 윤리다. 로뚜뚜를 통한 깨달음이다. 우리는 그렇게 연결된, 세계의 점들이다. 세계는 지금을 살아가는 무수한 점들에 의해서 돌아간다. 로뚜뚜의 속삭임이다. (공정무역)커피를 마신다는 건, 세계와 관계를 맺고 연결됨을 확인하는 행위다.

우리, 커피 한 잔, 할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