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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Own Coffeestory

오늘 하루,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커피...

by 낭만_커피 2011. 9. 25.
하루 25억잔.
전 세계가 마시는 커피 잔수다. 
나도 늘 일정부분 기여를 해 주시는데, 

오늘 마신 커피.
경주에서 맡았던 커피 향. 

아마도 오늘 하루,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커피!

어떤 초절정 고수나 커피 끝판왕이 내린 커피보다,
가장 내 마음을 따듯하고, 향기롭게 감싸주던 가을날의 커피가 있었던 하루.

사는 게 참 행복하다》의 조중의 선생님댁을 찾았고,
손님 왔다며 옆집 사모님이 정성스레 내려준 에티오피아 커피 한 잔이 행복했다.

직접 볶고 내린 커피 한 잔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마음 한 잔이,
내겐 가을 한 잔처럼 다가왔다.

아, 이게 가을 한 잔의 마음이구나. :)
커피 한 잔이 주는 위로와 행복이 이런 것이구나. 커피 한 잔이 참 행복하다!

시골의 햇살 한 스푼까지 더해져서 따닷해지는 마음. 

그리고 역시, 가을 오후 햇살 좋은 날의 Cafe Id.
포항시청 옆에 아이 없는 부부가 운영한다는 조 선생님의 단골집.

볼리비아 커피를 고른 것은,
순전히 체 게바라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다음달 9일이면, 44주기를 맞이하는 체 형님.
볼리비아라고 적힌 메뉴판을 보는 순간, 
볼리비아라고 쓰여 있었지만, 체 게바라라고 속으로 읽었다. 

묵직한 신맛의 혁명적 향기가 스멀스멀 내 마음을 감싸던 시간.
 
여자 사장님은,
리필이라는 부탁에 서슴 없이 에티오피아를 내려주셨다. 
시골인심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나는 그것을 마음으로 읽었다. 
에티오피아의 자연과 커피생산자의 노고와 Cafe Id의 마음이 버무러진 커피 한 잔의 고마움.

커피는 그렇다.
이성의 각성만큼이나 감성의 감동을 돕는다.

참, 고마운 일이요, 고마운 하루다.
이 거칠고 엄한 세상도 이렇게 향기로운 친절로 나를 달래고 감쌀 때가 있다.
변덕쟁이 세상 같으니! 가을의 햇살이 아름다운 이유.

나 같은 회의론자에게, 세상은 어떤 치부에도 얼굴색마저 바뀌지 않는 철면피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이 땅에 혁명은 없을 것이다. 야만도 쉬이 진압되지 않을 것이다. 
자본과 권력은 야합과 난교를 거듭하며 무간지옥의 질긴 생명력을 연장해 나갈 것이다. 

그럼에도, 
붙잡을 수 없이 스치는 찰나의 행복과 향기로운 친절과 고마움에, 
어설픈 커피쟁이는 조금씩 마음을 열고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커피의 마음이라고 믿는다.

조중의 선생님이 쓰고 계신 동학의 혁명적 순간을 다룬 장편소설이 잘 됐으면 좋겠다.
옆집 사모님이 하루 두 테이블 예약손님을 받아 마음 담은 요리를 선보일 수 있게 되면 좋겠다.
Cafe Id의 향기로운 커피가 좀 더 포항시내에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결혼을 하고 싶은 아는 사람도 좋은 사람을 만나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오늘,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커피가 준 내 마음의 가을이다. 

동양학자, 조용헌 선생은 이 험한 세상, 내공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것 네 가지를 말씀하셨다.
당신도 함께 되새겨봤으면 좋겠다. 우리, 이 세상을 건너기 위해 필요한 것일테니 말이다. 

혼자 자연 속에 머무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며,  
좋은 소리나 음악을 들어야 하는 한편, 
생사의 갈림길을 돌파해본 사람들과 만나 차와 식사를 함께 하라. 

오늘 나는, 이 네가지를 한 것 같다.
조금은 더 세상을 버티고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다행이다. :) 
 
오늘의 노래 선물인데, 노래는 커피소년의 '장가갈 수 있을까'. 
뮤직비디오에서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닭살 돋는 행각을 꼭 보시라. 웃겨 죽는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