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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Own Coffeestory/골목길 다락방

그리워... 그리워...

by 낭만_커피 2009. 10. 7.
어쩔 수 없는 일,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그런 것 있잖아요.

오늘, 제4회 장애인도예공모전 시상식에 공정무역 커피 케이터링을 나갔지요.
그 사람이 생각났어요.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던 그 사람. 


뭐, 억지로 떠올려서 되는 일도 아니고 그네들과 맞닥뜨리는 순간, 그건 어쩔 수 없었어요.
그들은 이미 바리스타 복장까지 멋지게 갖춰 입고서 유쾌하고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커피 트럭을 가지고 간 우리를 맞았지요.
물론 지적장애 정도가 심한 편은 아니었고, 몇몇 청년은 이미 바리스타 교육과 실습까지 한 터라, 큰 우려는 없었죠.

몇몇 설명을 마치고, 그들은 당당히 바리스타로서, 커피를 추출하고 나눠줬습니다.
비장애인인 저는 그저 옆에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실수 등에 대비해 지켜봐 주는 정도였죠.

물론 그들은 전혀 실수도 않았고, 누구보다 훌륭하게 바리스타 업무를 하더군요. 척척.
더디지만, 아니 더디다는 표현조차도 나의 편견에서 나온, 그저 속도가 약간 다를 뿐인,
커피 추출에서 건넴까지 혼신을 힘을 다하는 그들 모습. 
그런 모습들 보면서 나는 자꾸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맺히는 순간이 있었어요.


그 사람.
그 사람은, 비장애인이었던 그 사람은, 한국에서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멀리 다른 나라에서 특수교육을 새로이 전공하기 위해,
중증장애인을 위한 커뮤니티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택했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
힘들어했어요. 내가 그 먼곳을 허덕허덕 찾아갔을 땐, 우린 고작 2시간도 채 만나지 못했지요.
중증장애인들에게, 커뮤니티에서 갑작스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 때문에.
그렇게 미안해하면서도 고마워했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씩씩하게 정말 즐겁다면서 나를 안심시켜주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
어느 날은 편지를 통해 토로를 하더군요.
혼란스럽고 당황해하며 회의가 인다며.
나는 그 말을 간직합니다. "자립배양능력을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들에 대한 아낌없는 배려와 눈물나는 헌신을 해야 한다는데 솔직히 회의가 인다."

그  사람.
그럼에도 스스로를 붙들어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 사회가 안고 있는 그늘에 대해, 결국 우리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하고, 우리 중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한다는 기본 명제가 순간순간 되새겨져, 내 생활의 리듬을 찾아가게 하고 있다.."

그 사람.
그렇게 스스로를 힘겨이 지탱하고 안간힘을 쓰던 그 사람이 쓰러진 건, 얼마 후였죠. 
바보 같이. 바보 같이. 바보라고 그랬습니다. 물론 차마 앞에선 그 말, 꺼내지 못하고.

오늘, 그저 그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그네들이 저렇게 유쾌하고 활발하게 커피를 추출하고 건네주는 모습에서.
그들은 느린 것이 아니고, 그저 속도가 비장애인들과 다를 뿐이고, 움직임이 약간 다를 뿐.
전혀 나랑 다를 바도 없는 그 씩씩했던 청년들.

가을하늘이 정말이지, 구름 한 점 없더이다.
미칠 것처럼 맑았고, 바람은 휘몰아친 케이터링의 현장.

나는 그 바리스타 친구가 따라준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저 하늘을 향해 한 마디 건넸죠.
"한 잔 마실래?" 하늘이 웃습니다. 커피 향이 하늘까지 솟았나봅니다.

사랑니 같던 첫 번째 첫 사랑의 통증이 떠올랐던 하루.
나는 역시나 버티고 견딥니다.

아, 오늘 하루만 그리워할게요. 그저, 그리움 한 잔.
내일은 여전히 당신을 위한 커피를 따릅니다. 당신에게 내 마음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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