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안녕, CQN... 지못미, CQN...

낭만_커피 2008. 4. 7. 14:28
상영작 소식을 늘 메일을 통해 친절히 알려오던 CQN.
그런데 어라, 느닷없이 '폐관 공지'를 알리는 메일이 왔다.
허걱, 했다. 이 무슨 CB한 소식이란 말인가.


만우절 연장판, 허풍 메일이 아니었다.
부랴부랴 찾아간, CQN의 홈피(www.cqn.co.kr).
폐관소식과 함께 CQN의 마지막 '땡큐페스티벌'을 알리고 있었다.
허허, 땡큐라니, 아직 그 말을 건넬 때가 아닌데...
사정은 모르지만, 내심 아쉬움이 밀려왔다.

아니, 그건 슬픔이었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내 신경세포의 꿈틀거림.
사라지기 전까지는 모르는,
떠난 후에야 소중함을 절감하는 이 하찮은 미욱함.


CQN은, 명동에서 가장 즐겨찾던 극장이었다.
'씨네콰논'이라는 재일한국인이 운영하는 일본 영화사가 운영하는.
'캣츠21'이었던가, 소규모 멀티플렉스를 인수해 일본영화에 주안점을 둔 극장.

자주는 아니었지만, 나는 땡기는 일본 영화를 만나기 위해 CQN을 찾았다.
당장 생각나는 CQN에서 본 영화만 봐도,
<황혼의 사무라이>를 보면서, 야마다 요지 감독의 세공술과 철학에 감탄했고,
<유레루>를 보면서, 오다기리의 아름다움에 재차 찬탄했으며,
<클럽 진주군>
<피와 뼈>
<박치기>
<눈에게 바라는 것>
<디어 평양>
<검은 땅의 소녀와>
.
.
.
작고 아담했지만, 그 맛에 CQN을 찾았다.
다른 극장서 일찌감치 막 내린 영화가 종종 상영되고 있었기에,
CQN은 나의 막차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좀더 살가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폐관'이라는 너울을 썼다.
기사를 보니, 누적된 적자와 건물임대 문제가 복합적이었나 보다.
결국 '자본'의 문제 앞에, 힘쓸 재간은 없었지 않나 싶다.
☞ 일본 관광특구라도 영화특구는 아닌 명동

마지막까지 그냥 보낼 수 없었기에,
땡큐 페스티벌의 <린다린다린다>를 보고자 찾아갔지만,
아쉽게도 매진. 극장엔 사람들이 북적였다.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리라.
CQN에서 그렇게 많은 인원을 본 것은 처음일 정도로.

그렇다고, 그냥 그렇게 보낼 수도 없었다.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밴드 비지트>.
객석은 나를 포함해 5~6명 정도.
해체위기에 처한 이집트 경찰악단이 잘못 길을 잃어 이스라엘의 한 동네에서 보낸 하루.
그들의 연주가 어쩐지, CQN의 처지와도 오버랩돼서 좀더 구슬펐다.
그리고, 상영을 마치고 길을 나서면서, 내뿜은 담배연기.
점점 더 멀어져가는 어떤 기억들.
모든 것은 그렇게 떠나는구나...

그렇게 나는, CQN과 작별을 고했다.
폐관된 다음날, 홈페이지는 이렇게 건조하게 폐관을 알리고 있었고.

나즈막히, 나도 인사를 건넨다.
안녕 CQN...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CQN...

재작년엔 삼일극장,
작년엔 시네코아,
그리고 CQN,
아울러 곧 없어질 드림시네마...
그렇게 하나둘 멀어져 간다.
나의 문화유산들이.

하지만, 덕분에 나는 한가지 꿈을 품기로 했다.
<시네마천국>에 나온,
작지만, 객석에서만큼은 모두 평등한,
담배도 피고, 술도 마시면서, 영화와 하나가 되고,
옆사람과 요란과 소란법석을 떨면서 시끌벅적한,
앞좌석을 발로 차도 되는,
그런 극장을 만들기로. 나의 문화유산을 만들기로.
비록, 그저 꿈에 그칠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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