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을 무너뜨리지 않고 손을 잡는 법
그래, 너도 알다시피, 난 이제 월드컵을 즐기지 않아. 돈 잔치라거나 축구공에 담긴 불편한 진실 혹은 한 방송사의 독점 횡포 등과 같은 이유 때문은 아니라규! 축구는 그것 자체로 하나의 예술에 가깝다는 것, 알아. 팽팽한 근육끼리의 충돌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몸의 향연! 그것이 왜 싫겠느냐마는, 한국팀 경기는 왠지 좀 불편해. 때론 끔찍해. 그 한 목소리 때문이야. 대~한민국. 일사불란함을 유도하는 그 함성,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것 같애. 그곳에 개인은 없지. 오로지 군집만, 무리만. 대~한국인들만.
맞아. 지금은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월드컵 시즌. 슬슬 달아오르고 있네. 곧 후끈해지겠지. 어딜 가나 월드컵이 덤벼. 싫건 좋건, 이벤트를 비롯해 각종 광고를 맞닥뜨려야 하고, 어딜가도 화제로 꺼내지. 그러고 보면, 월드컵은 일견 우리 사회를 멈추게 하는 마취제 같지 않아? 어떤 사유도 허락되질 않지. 다른 목소리와 다른 이슈도 납작 엎드리지. 아무리 소리쳐도 삐져나올 구석은 없어. 감히 월드컵 앞에. 으르렁. 물론 나라고 과거가 없었겠니. 나도 한 때는 그 한 목소리에 파묻혀 지랄발광했더란다.
때가 때이니만큼 지금 다시 사람들이 월드컵을 화제로 꺼내. 별 관심 없다고 답하면, 허허, 완전 의외라는 눈초리 찌리릿! 별종 취급을 당하지. 약간 과장하자면. 어디 외계에서 왔니? 감히 월드컵을, 대~한민국을 외치는 않는다고? 넌 우리와 같은 족속이 아니구나. 월드컵을 앞둔 한국인의 방침에 어떻게 따르지 않니. 똑같은 생각만 하라는 무의식적 강요. 그러니까, 어느 편인지 답해야만 하는 구조. 다른 생각이라고? 넌 ‘틀린’ 놈이다. 나가 죽어라. 흑.
맞아. 이렇게도 말할 수 있지. 그저 함께 즐기자는데, 뭘 그리 까칠하게, 까탈스럽게 구냐, 응? 음, 그러고 보면, 그것도 맞아. 즐기지 못하는 놈이 바보지, 뭐. 전체가 원하는데, 내가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그런데, 그게 좀 무서워. 거칠게 말해, 전체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거든. 오버지만,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무의식의 유령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착각도 했더란다. 나, 아마 월드컵에 대해 삐딱한 생각, 불온한 생각 한다고, 끌려가지 않을까. 국가적인 시책에 동조 안 하니까. 한국인 아닌 거야, 그런 거야?
그래, 나는 이미 ‘틀린’ 몸. 그냥 포기할래. 응원하고 싶어도, 즐기고 싶어도, 그 한 목소리가 여전히 무서워. 앞서 우리를 들끓게 했던 천안함, 교원노조 명단 공개, 지방선거 등에서도 사회 일각에서는 ‘니가 어느 편인지 커밍아웃해’라고 깨방정을 떨더라. 지들 높은 양반들 생각과 다르면 엄벌에 처해야 한다며 윽박이나 지르고 말이지. 나, 한국인이긴 한데, 월드컵 때 꼭 한 목소리 내야 하는 거야? 어느 팀인지 꼭 밝혀야 되는 거야? 다른 팀 응원하면 안 되는 거야? 정말 그런 거야?
<드래곤 길들이기>가 기가 막혀~
그런 찰나에 만난 이 영화, 짜잔. <드래곤 길들이기>. 결론부터 말할게. 나, 위로 받았어. 바이킹과 용(드래곤),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빚어낸 앙상블이 와우, 완전 죽여. 아니, 정확하게는 용맹한 바이킹의 못난(?) 자손, ‘히컵’이 드래곤을 통해 바이킹 사회를 변화시키는 과정이 완전 감동이었어. 한편으로 꼭 지금의 우리네 풍경을 풍자하는 것 같아서 감탄도 했다규. 저 멀리 할리우드(드림웍스)에서 만들었는데, 어쩜 우리네 모습을 대입해도 저리 어색하지 않을까. 신기신기~
아니, 뭘 어떻게 봤길래, 그리 호들갑 떨고 있냐고. 좋아 좋아, 한 번 들어봐. 호들갑 한 번 신나게 떨어볼게.
이 영화가 실재 바이킹(족)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 하긴 그건 상관이 없겠다. 여기 버크섬에 살고 있는, 내가 본 바이킹만 놓고 말하자규. 이 바이킹의 모토는 ‘용맹’. 그 옛날, 반공을 국시로 했던 대한민국마냥, 버크섬에서 용맹은 족시야. 그 용맹을 증명하기 위해 드래곤과 싸워서 이겨야 해, 죽여야 해.
포악하고 사나운, 하늘을 날고 입에서는 불을 뿜어대는 무시무시한 드래곤을 말이야. 바이킹이 되려면, 즉 바이킹의 일원으로 인정받으려면, 드래곤을 포획하고 죽이는 ‘사명’을 품고 전사로 살아야한다는 거지. 그 옛날, 간첩이라면 곧장 신고하고 북한이라면 쳐 죽여야 할 주적으로 간주해야 대한민국의 ‘애국자’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바이킹의 방침, 대한민국의 방침(아 물론 정확하게는 권력자의 방침).
어린 바이킹들, 어른들로부터 주입된 그 방침, ‘받들어 총’이야. 전사가 되겠다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씩씩대더군. 진짜 바이킹이 돼야 한다는 미명 하에, "드래곤과 싸우는 것 그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명제를 고스란히 주입받는 아이들. 예쁜 미소녀 바이킹, 아스트리드도 거침 없이 말해. "바이킹이라면 용을 마땅히 죽여야 해." 무셔워, 무셔~
문제는 이것. 일생을 바쳐 용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데. 가공할 공격력과 습격을 일삼는다는 용들 때문에 만나는 즉시 죽여야하는 규율이라는데. 사실, '왜'인지는 모르겠다는 거. 드래곤을 불안해하고 보면 죽이겠다고 덤벼드는데, 왜 드래곤과 주야장천 싸워야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만나면 죽여야 한다는 것도 대대로 내려온 한 목소리일 뿐.
녀석은 아버지에게 말도 해보지. “빵 굽는 바이킹도 있어야 하고, 하수구를 뚫는 바이킹도 있어야 하잖아요.” 드래곤 잡는 ‘전사’ 바이킹만 있어야 하는 법은 아니라고욧! 전사가 되지 못하는 녀석의 변명 같지만, 아 난 그만, 그 말이심장에 콱! 나도 외치고 싶었다규. 꼭 붉은 악마가 돼야하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한 번만 더 되씹어봐. 대한민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잖아.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이 세상에 말이야. 17등 하는 한국인, 36등 하는 한국인 하면 안 되는 거야, 응? 기자 말고그냥 다른 사람 커피 만들어주는 사람 하면 안 되는 거야, 응?
어쨌든 그런 히컵. 말하자면, 버크섬 바이킹 사회의 루저. 어떻게든 인정투쟁도 해보고,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지만, 안 되는 걸 어떡해. 칼 찌르고 도끼 휘두르는 건 젬병인걸. 그랬던 그가 부상당한 드래곤, 특히 바이킹의 드래곤 교본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신비함과 두려움의 존재인 나이트 퓨어리, ‘투쓰리스(toothless)’와 만나는 건,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을 향한 우연한 시발점이더라.
녀석은 부상당한 투쓰리스를 죽이지 못하는데. 우연하게도 바이킹 역사의 한획까지 긋게 되지. 짜잔~ 300년 만에 처음으로 드래곤을 죽이지 못하는 바이킹의 탄생! 두려워하는 것 같아서, 마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죽이고 싶지 않았다는 어린 그리고 완전 새로운 바이킹. 바이킹의 방침에 어긋나는 뉴 바이킹의 탄생. 브라보~ 신인류여.
히컵과 투쓰리스, 둘은 그렇게 친구가 되지. 한쪽을 죽여야 사는 줄 알았는데, 어라 그게 아니네~ 서로 알지 못했던 존재들이, 각자의 취향도 알게 되고, 조금씩 자신을 보이면서 타인을 알아가는 과정. 참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로 어떤 현실의 풍경이 떠올라 짭쪼름하더라. 아예 등 돌린 채, 이전보다 더욱 서로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 남조선과 북조선. 오해를 거두니까, 서로를 알게 되니까, 두려움이 사라지더라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히컵과 투쓰리스는 보여주더라, 이 말씀.
우리에게도 히컵이 필요해
딱 나오더라. 날 때부터 바이킹의 DNA에 박혀 있던 것으로 알았던 ‘드래곤 죽이기’는 ‘바이킹 길들이기’의 과정에서 심어 놓은 사육의 결과! 사실 바이킹 꼰대들도 몰라. 자신들이 드래곤을 진짜로 알고 있는지. 그저 자랄 때부터 싸워서 죽이라는 것만 배웠고, '왜'라고 묻지도 않았으며, 드래곤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거야. 드래곤을 오해하고 있으니 만나면 죽여야하고 두려워했던 거지. 자신의 아이들에게 알려준 정보도 그렇게 갇힐 수 밖에 없는 정보일 뿐. '적'이라고 하면서 진짜 그들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게야.
히컵은 분명 다른 존재야. 바이킹이면서 전혀 바이킹스럽지 않은. 그들 사회에서도 혀를 끌끌 차게 만들던 존재였지만, 그의 진짜 재능과 능력은 다른 곳에 있었던 거야.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어른 바이킹들은 그야말로, 아둔한 꼰대들. 죽여야 할 드래곤이 아닌, 친구가 될 수 있는 드래곤임을 알아챈 히컵은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바이킹이었던 거야. 적을 대하는 자세부터 어른 바이킹과 다른. 드래곤의 생태를 알게 되면서 오해를 풀고 두려움까지 거세하고 종국엔 함께 공존하는 기틀을 다지는. 멋지다, 히컵~ 한 목소리에 풍덩 빠지지 않았다는 것도. ^.^
어른 바이킹들은 왜 드래곤이 자신들에게 포악하고 사나운지,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거기서 반짝! 다른 타인을 배척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지금 여기 대한민국의 모습과도 오버랩. 누구 편인지 물어보고, 내 편인지, 남의 편이지 갈라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상대를 무력으로 무너뜨려야 제압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적에 맞서 용맹하게 싸우고 죽이는 것이 만사지탄이라고 여겼던 가치. 뭔가 떠오르지 않아? 해석이 약간 지나칠지 몰라도, 대한민국을 헤집고 떠돌아다닌 그 유령. 아직도 잔재가 남아 심심찮게 떠돌아다니기도 하는 유령.
“너희들에 관해 우린 전부 틀렸어.” 무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드래곤을 제압했던 히컵의 유레카(바로 이거야)! 어쩌면 우리도 그랬던 것은 아닐까. 상대를 무너뜨려야만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 타인을 이해는커녕 인정하려는 노력도 않고, 우리가 틀린 것도 모른 채, 관행처럼 관성처럼 과거의 맹목에 끌려 다닌 것은 아녔을까.우린 제대로 저들을 알고 있는 걸까.
그렇지, 우리에게도 히컵이 필요해. 사회가 요구한 것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또한 그렇게 행동하는. 난 얼마 전, 쥐소굴에서 흘러나온 이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어. “우리는 전쟁을 두려워하지도 않지만 전쟁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전쟁할 생각이 없다.” 세상에나!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게 지금의 통치자 입에서 나올 소리야? 전쟁이 어떤 것인지 뜨겁게 데여본 나라의 통치자가 전쟁이 두렵지 않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 대한민국은 아직도 전쟁을 해야 유지되는 나라니? 대한민국 누구보다 샤우팅을 사랑하는 동혁이 형아~ 좀 혼내주쇼잉~
꼰대 바이킹들과 똑같은 소릴 해대는 저들은 아직 드래곤을 제대로 몰라. 그저 학습된 잘못된 정보에 의해 조건반사처럼 움직일 뿐. 꼰대 바이킹들도 나중에 히컵에게 사과하던데, 글쎄, 선거결과를 놓고 저들은 제대로 사과할까? 2년 전 반성한다고 했던 것을 하루아침에 반성의 주체를 뒤집었던 쥐새끼는 또 어떤 변덕을 부릴까. 저어기 파란 쥐들이 이 영화를 봐줬으면 좋겠어. 물론 본다고 이해할까마는. 당최 불안한 것도 많고 두려운 것도 많아서 그걸 사전에 잡아족치려고 삽질부터 하고 보던 현 서울시장과 경기지사에게도 권함. 우린, 드래곤도 아닌데, 왜 자꾸 그러니. <드래곤 길들이기> 보고 정신 쫌 차려, 응!!!
(아 근데, 이런 불온한 애니를 국내에서 개봉하게 하다니, 쥐세이 니들 참 아무 생각이 없었구나, 그치? -.-;)
아, 그리고 진정 이 이야긴 네게 꼭 해야겠어. <드래곤 길들이기>의 활공 장면! 히컵이 부상당한 투슬리스의 비행을 돕는 기구를 만들어 부착해 주면서 시작한 비행은, 암석 사이를 투과하는 곡예 비행을 거쳐, 아스트리드를 태우고 활공할 즈음이면 그건 짜릿함의 극치야. 롤러코스터를 타고 하늘과 바다를 오가는 쾌속의 쾌감이었달까. 말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짜릿했었어. 그런 비상 쾌감. 그리고 석양이 비춰올라치면 그건 거의 극점에 가까운 아름다움. ^_______^
아, 나도 드래곤이랑 함께 살고 싶어. 그의 등에 올라타 그 짜릿한 비상 쾌감을 느끼고 싶어. 물론 여자친구도 태워야지. 앙, 드래곤 드래곤. 어쩜 이렇게 사랑스럽니. 몰랐다~얘~~ 정말, 드래곤과 함께 살고 싶어질지 꿈에도 몰랐다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