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바이러스, 클래식을 말하다
음, 그러니까 클래식, 어릴 땐 버겁다고만 생각했는데,
차츰 세월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면서 클래식이 귀에 조금씩 들어온다.
클래식이, 곧 시간의 무게를 견뎌낸 음악이기 때문일걸까.
지난 5월 찾았던 고향에서 만난 고향 사람.
드라마 <베트벤 바이러스>의 음악감독 서희태.
그때, 지휘자도, 아니 지휘를 한번이라도,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라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
아,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일인가 말이다!
지휘도 그렇지만, 악기!
재즈피아노, 꼭꼭꼭.
무엇보다, 내 오랜 좋은 친구, 기 녀석과 함께 했던 강연의 시간.
그때 녀석의 연애, 가슴 뛴다는 그 사랑 얘기를 듣고, 내 일처럼 좋아했었지. ^.^
그러니까 오페라의 노래 '오랜만에 우린'이 떠올랐던 그때 그 시간.
나도 맘이 설레.. ♪
이번엔 놓치면 안돼.. 그동안 너무
넌 외로웠잖아. ♬
그 어느해 너의 생일에
여자친구 하나 없던 우리..♩
그날을 기억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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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만남] 『베토벤 바이러스』의 저자 지휘자 서희태
클래식. 그 이름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잠 잘 때 듣기 좋은 음악? 듣기만 해도 잠이 오는 음악? 아니면 영혼을 파고드는 음악?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고개를 절래절래? 단정 지을 순 없지만, 클래식은 다른 장르의 음악에 비해 거리감이 있어요. 당신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클래식, 왠지 어려워 보여요. 같은 음악인데, 왜 유독 클래식에 대한 편견만 강할까요.
하지만 그것 아세요? 클래식은 늘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 여느 다른 장르의 음악보다 더 가까이에서 우리를 감싸고 있다는 것. 그것이 클래식이라고 인식도 못할 정도로. 여기 이 말을 볼까요.
“클래식은 조회시간에도 들리고, 지하철 환승할 때, 전화 수신대기 시간에, TV 화면 조정 시간에, 심지어 청소차가 후진할 때도 들려오는 게 클래식이다. 곡의 제목만 몰랐을 뿐 우리는 늘 클래식과 함께 살고 있다. 현관의 벨 소리,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을 알려주는 종소리 등등 늘 듣고 꾸준히 접하고 있는 게 클래식이다.” (pp.62~63)
클래식, 시간의 무게를 이겨낸 음악
그는 대뜸 송대관의 ‘네 박자’를 얘기하네요. 알죠? “쿵짝쿵짝 쿵짜라쿵짝 네 박자 속에~♬” 즐겨서 부르는 노래랍니다. 클래식 지휘자가 부르는 트로트라. 왠지 재밌는 그림 같죠? 하하. 그가 묻습니다. 이런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차이가 무엇인지. 클래식 좀 안다고 하면 뭔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 같고, 교양이 넘칠 것 같은 그런 편견들. 있지 않나요? 그러나 대중음악은 그렇지 않고. 그러나 그는 얘기합니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클래식 전공자의 확언.
그것으로 끝나면 재미가 없겠죠? 역시나 ‘다만’이라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클래식은 시간의 무게를 견뎌냈다는 것이 다릅니다. 300~400년의 시간의 무게를 견뎌낸 것이 클래식 음악이에요. 지금도 작곡되고 있고, 당장은 빛을 못 봐도 300~400년 연주되면 클래식이 되는 거죠.” 아하. 그러니까 방점은 시간의 무게. 그러니까, 고전.
책에도 이런 설명이 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클래식 Classic’은 고전적이라고 표현돼 있다. ‘최고의 클래스 Class’의 뜻에서 파생한 것으로 ‘최고 수준의, 고상한, 역사적, 문화적 연상이 풍부한, 유서 깊은, 권위 있는, 정평 있는, 유행에 매이지 않는 전통적인’이라는 형용사가 달려 있다.”(p.60)
한때, 그래봐야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쥬얼리의 ‘베이비 원 모어 타임’이나 원더걸스의 ‘텔미’, 손담비의 ‘미쳤어’, 소녀시대의 ‘GG’... 우리를 열광시켰던 이 노래들.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고, 따라부르게 만들었던 이 노래들. 그러나, 지금 부르세요? 유행도 썰물처럼 지나갔죠. 노래방 가서 한 번씩 흥을 돋우기 위해 부를까. 이들의 생명력은 이미 다했죠. 그야말로 대박도 터뜨렸고. “지금 H20, (관객들 웃음) 아 HOT라고요? 여하튼 지금 HOT 노래를 부르면 한물 간 노래하냐고 타박을 받아요. 지금은 ‘쏘리쏘리’죠. (웃음)”
듣고 보니 그렇죠? 당신의 더듬이도 더 이상 철 지난 유행가에 있질 않잖아요.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더듬이를 세우고 있지. 그러나 역시 클래식은 다른 법. “대중음악의 문제점은 시간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다는 거에요. 클래식은 그렇지 않죠. 클래식은 우리나라의 장과 같아요. 잘 발효되면 된장, 고추장이 되는. 더구나 1700년대 이전에는 녹음되지도 않았지만, 지금까지 전해지는 음악들이 있죠. 그게 클래식입니다.”
같은 맥락의 이야기. “클래식 음악은 발효된 장醬맛 같다. 한국의 장 문화는 오랫동안 반지하 항아리에서 묵어서 발효가 된다. 클래식 음악도 장맛처럼 수백 년의 시간을 지나서도 여전히 사랑받는 음악들을 말한다.… 시간의 무게를 잘 견뎌서 지금도 생명력을 지닌 음악, 그것이 클래식이다. 세월의 검증을 거친 음악이면 그게 클래식이다.”(pp.60~61)
이렇게 좋은, 시간을 뚫고 우리와 교감하고 있는 음악들이 그럼 왜 외면을 받을까, 궁금하죠. 서희태 지휘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나라 TV에서 재밌는 것을 많이 보여주다보니 사람들이 찾아서 하는 문화 활동을 주저해요. 단편적으로 유럽에서는 왜 이렇게 오페라에 열광하느냐. TV가 재미없어서 그래요. 그런데 우리는 TV에서 안 보여주는 게 없으니, 오페라나 클래식 같은 것을 향한 열망이 없지 않나 싶어요.” 일리가 있죠? 끄덕끄덕.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잡아주는 클래식
“대중음악은 재현없이 한번 쭉 발전하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소나타 형식은 재현돼서 다시 돌아와 안정을 찾아요. 이성과 감성이 불균형을 이루는 아이들이 많은데, 클래식을 들으면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찾는데 도움을 줘요. 연구결과도 있어요. 모차르트 음악을 들은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놓고 실험을 했더니, 모차르트 음악을 들은 아이들의 평균점수가 9점이 높았어요. 물론 단편적인 정보지만, 논문이름도 ‘모차르트 효과’로 네이처지에 실리기도 했죠.”
아, 저 말 들어봤죠? 그래서 한때 모처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모차르트를 들려주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는. 물론 이 같은 효과가 과장됐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죠. “클래식이 정서적인 안정을 줘서 감성이 안정을 찾음으로 인해 학업에 도움이 됐다는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2008년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어릴 때 음악활동이 활발한 아이들이 고학년으로 갈수록 학업성취도가 높게 나왔다는 연구결과도 발표했어요,”
실제 1975년 남미의 베네수엘라에서 경제학자이자 오르가니스트가 아이들에게 악기를 사주고 음악을 가르쳤대요. 그렇게 음악과 마주하며 살았던 한 아이가 커서 LA 차기상임지휘자로 발탁이 됐는데, 이런 말을 했대요. “음악은 우리에게 삶의 충만을 줬고, 지금 음악은 나의 삶이다.”
열악한 경제상황이었던 베네수엘라에서도 음악은 그렇게 꽃을 피웠고, 덕분에 현재 차베스 대통령도 자국의 50만명 어린이들에게 음악교육을 시키고 있답니다. 우리나라도 다문화․저소득층 어린이들에게 음악교육을 무상으로 시켜주는 제도가 지난해부터 시작했대요. 현재 7개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데, 좀 더 넓혀질 예정이랍니다.
서희태를 사로잡은 베토벤
그가 음악을 사랑하게 된 하나의 계기. 그는 어릴 때, 오케스트라를 들으면 우주의 소리라고 생각했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워크맨이 우연히 그의 손에 들어왔는데, 바로 레코드 가게에 달려갔습니다. 그때 처음 샀던 테이프가 요한 스트라우스의 황제왈츠. 무척 좋아서 수업시간에도 들을 정도였고, 그래서 선생님께 많이 맞았지만. 그 테이프, 지금도 갖고 있지만, 닳고 닳도록 들어서 소리는 더 이상 나오질 않는다네요. “그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을 사랑하게 됐고, 우주의 소리를 듣게 됐어요.”
그만큼 그는 음악에 매혹됐습니다. 특히나 베토벤의 음악이 그를 완전히 사로잡았답니다. 베토벤의 9번교향곡 제1악장을 들으면서도 우주의 소리를 듣게 된 그는, 당시 부산시내 도서관이라는 도서관은 다 돌아다니면서 베토벤에 대한 모든 책을 섭렵할 정도였다니, 그의 베토벤 사랑은 유별난 면이 있었죠.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간 것도 별 다른 이유 없답니다. 오로지 베토벤.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 제목이 나온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죠?
“베토벤이 귀가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곡을 썼다는 것을 지금도 믿지 못해요. 유학을 빈으로 간 것도 베토벤이 거닌 산책로를 거닐고 싶다. 베토벤의 언어였던 독일어로 말해보고 싶다. 베토벤의 후손들과 나도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냥 베토벤의 흔적을 따라 숨 쉬고 싶었어요. 그래서 10년을 있었고.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하고, 여러분과 만나게 되고.
최근에는 베토벤을 사랑한 제가, 사람을 제대로 골라 사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웃음) 왜 ‘베토벤 바이러스’냐고요. 베토벤은 악성이고, 거룩한 음악이죠. 그래서 위대한 음악, 거룩한 음악에 감염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바이러스’라는 부정적인 단어를 써야 하느냐 고민도 했지만, 지금은 행복 바이러스니 사랑 바이러스니 하는 말도 많이 쓰잖아요. 바이러스라는 단어를 긍정적인 의미로 바꾼 계기도 되지 않았나 봐요.”
클래식 음악전도사의 꿈
그는 스스로를 ‘클래식음악전도사’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클래식을 좀 더 대중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죠. 지난 2002년 개그맨 전유성과 함께 한 ‘아이들이 떠들어도 화내지 않는 음악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음악회는 7세 이상 입장이 일반적인데, 5세 이상 입장하게 했지요. 1시간30분 공연을 했는데, 희한하게도 아이들이 떠들지 않았대요. 시작하기 전에도 떠들면 어떡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음악회가 아이들에게도 재밌었나 봐요. 그는 이것을 ‘혁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클래식은 늘 우리 곁에서 의식하지 않아도 울려 퍼집니다. 결혼식장에서 늘 듣곤 하는 결혼행진곡은 어때요. 피아노 솔로로 많이 듣곤 하는데, 그는 사실 이것이 3관 편성의 곡임을 알려줍니다.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에 축하행진곡입니다. 오케스트라 80~90명 정도가 연주하는 곡이죠. 신부 입장할 때 울려 퍼지는 곡은 바그너의 ‘엘자의 결혼행진곡’이죠. 4관 편성의 관현악과 4부 합창곡이에요. 우리는 이것들을 피아노 솔로로 듣고 있는데, 제대로 들으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런 그는 대중과의 접점을 확대하기 위해 6월에 콘서트를 가지는 것을 비롯, 11월에는 홈페이지에서 신청곡을 받아 콘서트를 들려주는 것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 가곡쇼 또한. “클래식을 성악가가 아닌 락밴드나 아케펠라, 대중가수들이 하면 어떨까요. 그것을 해보고 싶어요. 10월에 열리는 한국가곡음악회에서 지휘를 맡기로 했는데, 아케펠라, 성악가, 시 낭송 및 오케스트라가 한데 모입니다. 그런 진일보한 한국가곡 음악회도 기획하고 있고, 내년에는 한국가곡쇼를 할 겁니다.”
또 원래 저한테 출연 제의가 들어왔던 쿠쿠밥솥 CF에는 신세계교향곡 4악장의 다른 부분이 쓰였죠. 학교수업 종소리는 소녀의 기도이고, 쓰레기차의 음악은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입니다. 이런 곡들 여러분들도 잘 아시잖아요. 그렇게 클래식과 친해지려면 간단하고 이름 외우기 쉬운 클래식부터 들으세요.”
무엇보다 느낌 그대로 흡수하는 것. 그러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 그는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 마에가 새로 온 무미건조한 최 시장에게 클래식을 들려주며 그 느낌을 설명하는 장면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아요. “누구와 함께 듣는지, 어느 장소에서 듣는지, 어떤 상황에서 듣는지에 따라 음악은 항상 다르게 다가옵니다. 그러니까 별 것 없어요. 느끼는 그대로 들어 주시면 돼요. 영화 <미션>을 보면 가브리엘 신부가 오보에를 연주하는 장면이 있어요. 원주민들이 그 음악을 듣고 무기를 내리고 가브리엘 신부를 마을로 모셔가죠. 칼이나 창보다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음악이에요. 음악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음악, 그 아름다운 희열을 위해
클래식. 서희태 지휘자의 얘기를 듣자니, 너무 어렵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네요. 음악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되고요. 음악이 늘 우리 곁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꼭 하나라도 악기를 한번 다뤄봐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특히나 아이들이 있다면 콘서트장에도 데리고 가고, 음악적 환경에 노출시켜주는 것이 아이의 정서함양과 삶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아이를 사랑하는 실천적인 방법 중의 하나.
“악기 하나를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자기만의 방을 하나 갖는 것이라고 본다. 힘들고 외로울 때 혼자 연주할 악기가 있다는 것은 대단한 힘이며 행복의 요소다. 지금부터라도 한 가지 악기를 선택해서 그 악기와 친해지는 건 어떨까. 만약 악기를 배우는 것이 힘들다면 악기 하나를 선택해서 그 악기를 사랑해보라. 그러면 클래식 음악이 더욱 친근하게 드릴 것이고 가요를 듣더라도 그 악기가 연주하는 부분에서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p.144)
[YES24 기고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