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드 쭌/무비일락

[내 인생의 영화 ①] 내 생의 알프레도 아저씨(들)에게…

낭만_커피 2010. 8. 8. 20:59
1. 그때가, 2006년의 11월이었죠.

사실, 11월은 그래요. 여느 달과 달리, (주말을 제외한) 휴일도 없고 특별한 축제나 기념할만한 날도 없어요. 맞아요. 무미건조한 달! 만추의 기분요? 에이, 설마~ 그 달은 겨울과 가을 사이에 끼여서 딱히 제 나름의 계절적 정체성도 가지기 힘든 달이에요. 친구는 그러더군요. 겨울로 가는 길목에 '사산아'처럼 던져진 달이라고. 떨어지는 낙엽들 때문에 스산하기까지 해요(그나마 '빼빼로데이'가 있는 것이 위안이랄까요~ ^^;).


그런 낙엽을 보자면, 마음도 싱숭생숭한데, 그해 11월, 우리는 당신을 보내고야 말았죠. 사산아 같은 달에 누군가를 그렇게 보내는 건, 더 큰 감정노동을 동반해야 해요. 누군들 누울 자리, 누울 달을 따져서 눕겠느냐마는, 그렇게 ‘천국’으로 당신을 보내는 일, 쉽지 않았어요. 


그래요. 알프레도 아저씨. 당신은 그때 그렇게, 떠났습니다.
뭐랄까. 아저씨를 대면하거나 얘기를 나눈 적 없지만,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서 원한다면 기댈 어깨를 언제든 빌려주는 사람이 갑자기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할까요. 아저씬 그런 사람이었어요. 집 나간 고양이처럼 떠돌아다니면서 세상에 치이고 치이다가 다시 돌아가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날 반가이 맞아줄 것 같던 사람.


하긴, 아저씨는 영화 속에서도 그랬어요. 토토에게 말이에요. 아저씨를 토양으로 삼고 자란 토토가 성공한 영화감독이 된 뒤에도 아저씨를 찾아오지 않았죠. 하지만 아저씬 토토를 믿었고, 언젠가 돌아올 그를 위해 눈물겨운 선물을 준비해 둔 사람이었죠. 그 선물. 토토가 아니라도, 그 선물을 보고선 눈물 한번 흘리지 않은 사람 없을 걸요. 아, 제게도 아저씨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르긴 몰라도, 아저씨는 <시네마 천국>을 심장에 깊이 새긴 사람에게 영원히 자리매김하고 있을 거예요. 어린 토토가 그렇게도 따르고 좋아하던, 토토에 대해 절대 애정을 가지고 있던 당신. 토토의 (유사) 아버지였고, 선생님이었으며, 두목인 한편, 무엇보다 친구였던 당신.



2. 친구, 맞아요.

그래서 아저씬, 욕심이 크게 없었나 봐요. 사람에 대해서도, 영화에 대해서도. 그랬기에, 영화나 인생을 즐겼으며, 친구를 묶어두지도 않았던 거겠죠? 그리고 친구에게 멘토가, 카운슬러가 되어주었겠죠. 특히, 종종 보여주신 약자를 향한 애정, 그것 또한 인상 깊었어요. 스스로 부유하진 않았지만, 넉넉하고 풍족한 마음씨로 없는 사람을 대했던 친구.

그런 친구를 구름의 저편으로 보냈을 때, 슬픔도 슬픔이지만, 참 아쉬웠어요. <클로저>에서 주드 로가 분했던 부고전문기자, 댄이 말했듯, 제대로 된 부고기사를 접하지 못해서, 내가 그것을 제대로 못해서.ㅠㅠ 부고는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1인분의 생이 마감됐음을, 그 죽음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사람들은 때론 간과하는 것 같아요. 온전한 하나의 세계가 사라지는 그 순간에 말이죠. 그 세계가 다른 세계에 미친 영향은 또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그래서 알프레도 아저씨를 제대로 알렸어야 했는데 말이죠.


어쩌면, 이 포스팅은 아저씨에 대한 미안함을 담은,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친구처럼 당신을 생각했던, 한 젊은이가 보내는 연서이기도 하지요. 더불어, 지금까지의 제 생애를 지탱하게 만들어준,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아저씨와 같은 친구들에게 건네는 이야기. 아저씨 없는 토토가 없듯, 아마 그 친구들 없이는 제가 없었을 거예요. 그렇기에 ‘시네마 천국’은 어쩌면, 제 얘기가 아니었을까요. ^.^  




3. 저는 한때, ‘ToTo’라는 아이디를 가진 적이 있었어요.


당연히 <시네마 천국>의 ‘토토’에서 빌린 아이디였죠. 내 인생의 영화, 많지만 0순위를 꼽으라면 저는, 주저함 없이 <시네마 천국>을 말합니다. 아마도 고등학교 때였죠. 그보다 어릴 적부터 영화를 좋아하고 극장을 드나들던 저였지만, 그건 일대 사건이었죠.  단순히 영화 제목이 마음에 들어 만났던 <시네마 천국>. 대수롭지 않게 앉았다가 끝내 엉덩이가 무거워져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던 시간이었어요. 눈물까지 범벅이 돼서, 몰입하고 말았던 그 첫 번째 대면의 시간.


그 전까지 <시네마 천국>만큼 가슴을 후벼 판 그런 영화,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토토와 알프레도 아저씨의 우정. 아버지 잃은 어린 토토가 유사 아버지이자 친구인 아저씨와 나눈 감정의 교류. 이전에 절 울렸던 한권의 책,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 만났던 제제와 뽀르뚜가 아저씨의 느낌이 영상으로 되살아난 기분이었어요.



그들은 서로 만집니다. 몸의 접촉을 넘어선, 서로의 마음을 만져주는. 그건 소통이고 정서적 공유였죠. 누구 하나의 의한 가르침이나 주입이 아닌, 서로가 삼투압하고 번집니다. 모든 포유류는 본능적으로 피부접촉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추구한다죠.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오갈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접촉을 통해 함께 자랍니다. 만지고 만져지는 자연스러운 스킨십이죠. 그들의 상호관계성이 형성되는 과정이 저는 눈물겨웠나 봐요. 처음 볼 땐 무작정 몰입됐던 그들의 이야기가 자라면서 더욱 가슴 한 켠에 숨 쉬게 된 건, 아마 그런 ‘관계’ 때문입니다.

알프레도 아저씨는, 토토에게 이런 말도 건네죠. 
“토토, 네가 영사실 일을 사랑했던 것처럼 무슨 일을 하든 네 일을 사랑하렴...”

어린 날부터 뻔질나게 영사실에 드나들던 토토에게, 영화(일)를 하라고 얘기하진 않아요. 그저 자신의 일을 사랑하라고. 그건 곧 자신을 사랑하라는 의미까지 담은 표현. 아저씬, 만지고 만져질수록 자신과 상대방의 존재가 커짐을 머리가 아닌,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맞죠? 아저씨. 만질수록 커진다!



4. 제게도 그런 친구가 있어요.


말하자면, 그들은 제게 알프레도 아저씨이자, 뽀르뚜가 아저씨. 중학시절 만났던 내 친구 상현이. 녀석은, 정말 다른 친구와 달랐어요. 고만고만하게 비슷한 환경의 세계에 묶여 있던 제게, 녀석은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려줬죠. 경제적으로 가난한 집안의 그는, 풍부한 감(수)성과 마음씨를 지닌 문학 소년이었어요. 녀석은 조숙했어요.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그는 너른 웃음을 지니고 있었고, 다른 사람도 먼저 생각할 수 있음을 알려준 친구. 교내 백일장을 휩쓴 그의 글을 보자면, ‘아 어떻게 이런 글이 나오지’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었고요.


저는 무작정 녀석이 좋았고, 많이 따라다녔죠. 10대의 좁은 내 세계에 변곡점이 됐던 그 친구. 똥고집부터 부리고 혼자만 알았던 제게, 처음으로 세상에 가난이 있음을, 다른 친구를 우선 생각할 수도 있음을 알려주었죠. 우리는 늘 밥을 함께 먹고, 녀석과 내 집을 오가며, 자전거를 함께 타고 공부는 물론 노는 것도 함께 했었죠. 내게 그렇게 번졌던 그 친구. 나는 얼마나 그 친구에게 번질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참 고마운 친구.


그리고 20대. 나는 또 다른 알프레도 아저씨를 만났죠. 군대를 갓 제대하고, 폭력적이고 가혹한 율법에 날이 서 있던 제게, 타국에서 만났던 그녀는 내 안의 독을 빼주었어요. 한 지역방송사의 기자였던 그는, 모든 사회적 지위를 버리고, 다시 공부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었죠. 그 먼 타국에서 우린 참 많이 걷고 이야길 나눴죠.
 

내가 놀란 건, 그의 선택이었어요. 당시 자본이 부추기는 욕망에 더 가까이 있던 내게, 그는 우리 인간 사회가 안고 있는 그늘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줬죠. 그는 그 그늘은 결국엔 우리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고, 우리 중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기본 명제를 품고 한 장애인 커뮤니티에 자원봉사자로 자신의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특수교육(Special Education)으로 진로를 잡은 선택이었죠. 


물론, 그의 선택이었지만, 그도 인간이었기에, 그는 내게 간혹 토로했었죠. 혼란스럽고 당황스럽기도 한 상황에 회의를 내비치면서. 그러나 그는 억지로 버티고 견디지 아니했어요. 자신의 몸이 고장이 나기 전까지는. 그는 많은 시간 즐거웠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달뜬 목소리로 자신의 행복을 말해주기도 했었죠.

그 사람, 또 다른 알프레도 아저씨였던 그 사람. 그 덕분에 나도 꿈이 생겼고요. 그는 알프레도 아저씨가 토토에게 했던 마냥, 내게 이런 말을 건넸죠. “건강하게 사회 속에 썩어 들어가기 바라네. 해서, 사회기둥의 한 뿌리가 되어 있는 자넬 보고 싶네,. 든든한 한 뿌리가..” 이건 내겐 절대반지가 됐어요. 그때 이후 내 생을 지탱하는 하나의 축대가. 영원히 지키리라 장담할 수 없지만, 든든한 뿌리까지 될 자신도 솔직히 없지만, 늘 내 가슴 속에서, 숨이 멎는 그 날까지 간직한 그 말. “건.강.하.게. 썩.어.들.어.가”라는 그 말.


맞아요. 그들을 널 만나기 전과 만난 후, 저는 사람이 완전 바뀐 건 아니지만, 약간 달라졌어요. 그때그때 내 생은 그들을 만나기 전과 그 후로 나뉜 거죠. ‘before’와 ‘after’. 삶에서 경험하는 어떤 균열이라고 해도 좋을. 그리고 지금 새로 시작한 일. 그들이 추동한 것이나 마찬가지죠. 앞서 했던 일도 물론 그랬지만, 지금도 그래요.


내겐 그 친구들이 바로, 알프레도 아저씨랍니다. 사실 지금 그들은 나는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이유들로 인해.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여행스케치의 ‘옛 친구에게’가 있어요. 그 노래 들을 때마다, 나는 내 알프레도 아저씨를 떠올리죠. “지난 내 어리석음 이젠 후회해 하지만 넌 지금 어디에… 아직도 나를 기억 한다면 날 용서해주오♪” 그들, 잘 있겠죠?



5. 작은 바람이 생겼어요.


알프레도 아저씨가 토토에게 그랬고, 그들이 나에게 그랬죠. 그것이 단 한 사람에게 일지라도, 당신이 내게 그러했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번졌으면 좋겠습니다. 맞아요. 당신은 내게 그런 번짐이었습니다. 우린 느닷없이 만나고 느닷없이 헤어진 상태지만, 그건 생에 있어 하나의 단계이자, 수순이라는 생각도 해요. 알프레도 아저씨를 훌쩍 떠나보낸 채, 뒤늦게 그를 찾아간 토토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해요.



그래도 느닷없이 잊히진 않아서 참 다행입니다. 당신의 번짐이 아직 제 가슴에 번진 채 있어서 역시 다행이에요. 토토가 알프레도 아저씨를 만난 것이 우연이듯, 우리의 만남도 우연이었어요. 그 우연이 우연을 불러 인연이 넓어지고, 인연은 또 다른 세계를 만나게 해 줬네요. 당신과 맞닥뜨린 이 우연이, 인연이, 저의 세계를 더 넓혀줬습니다.

당신은 내게 그런 번짐이었습니다.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 속밖에 없다”(『냉정과 열정 사이』)는 말이 맞다면, 당신들은 내 속에서 여전히 번지면서 있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제는 저도 그런 번짐이고 싶어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영사기를 통해 비치는 영상이 토토에게 경이로움과 감탄이었고, 또 다른 세계를 알게 된 창이었을 겁니다. 알프레도 아저씨가 그것을 전해줬고. 그것만큼은 아니지만, 제가 건네는 커피 한 잔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작은 번짐이자 아주 작은 위안이 됐으면 좋겠어요. 저는 늘 커피와 함께 제 마음 한 잔도 담아주고 싶어요. 그것이 제 작은 바람이에요.
커피 한 잔, 번짐 한 모금...


마지막으로, 장석남의 ‘수묵정원9-번짐’이라는 시를 건넵니다.
고마워요, 알프레도 아저씨(들)...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