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수잔 손택’이 건넨 한마디
낭만_커피
2009. 2. 9. 19:27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수잔 손택(Susan Sontag)’이 건넨 한마디
(1933.1.16~2004.12.28)
(1933.1.16~2004.12.28)
내 얘기 좀 들어볼래?
벌써 4년이 흘렀군. 4년 전 12월28일, 난 이 끔찍한 세계의 고통에 더 이상 삼투압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 어쩔 수 없었어. 나도 활동을 계속 하고 싶었지만, 병마가 날 더 이상 놔두질 않더군. 알다시피, 난 세 차례 암과 싸웠잖아. 그러면서 그 고난을 질료 삼았지. 내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한 말, 알지? “질병은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임에도 불구, 학자나 작가들이 만들어낸 병에 대한 은유적 이미지가 환자들의 질병에 대한 투쟁을 방해하고 있다.”
내 몸의 질병도 그렇지만, 세계가 앓고 있는 질병 또한 그래. 전쟁과 같은 ‘질병’을 스펙터클화하고 은유함으로써, 우리의 감각과 이성을 마비시키지. 놀라운 잔대가리야. 특히 부시 같은 전쟁광이 그랬지. 나도 저 하늘에서 신발을 던지고 싶어.
요즘 구름 아래를 내려다보니, 시끌시끌하면서도 골골거리네. 금융위기, 경제위기, 불황이니, 스스로 제어하지 못한 탐욕의 결과물에 거침없이 흔들리는 것이 안타까워. 입으론 그렇게 호들갑을 떨지만, 정작 몸과 마음은 풀이 죽었으니, 이 불협화음을 어찌해야 할까. 실업의 공포가 또 얼마나 사람들의 영혼을 잠식할 런지. 기득권들은 또 이것을 악용할 텐데...
다른 무엇보다 ‘악’소리 제대로 내지도 못하는 이들이 눈에 밟혀. 누구도 돌아보지 않고,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들. 내가 떠난 시점이기도 하지만, 연말이라 더욱 그러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할 땐데... 내 코가 석자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고개 돌릴 여지가 없으니.
내가 1988년에 김남주 시인 등 구속문인 석방을 촉구하기 위해 방문했던 한국에선, 이 엄혹한 시기에 더 엉뚱하고 해괴한 일이 벌어지더군. 파시즘이 창궐하는 것이 아닐까싶을 정도로, 엉성한 독재자가 온통 물을 흐려놓고 있어.
없는 사람보다 있는 놈을 위한 정책이 남발되는 건, 기본. 지옥에서 한 철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을 ‘일제고사’의 늪에 빠뜨리고, 아이들 앞에 떳떳하고자 한 교사를 해직하고, 상해임시정부를 인정 않는 오도된 역사를 설파하고, 노동부가 최저임금을 깎자는 안을 내놓질 않나. 그 와중에 정작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이나 복지정책은 시궁창 개만도 못한 신세고.
그래 맞아. 이 세계에는 헤아릴 수도 없는 수많은 아픔과 고통이 있어. 나와는 전혀 상관없고, 내 책임도 아닐 법한. 그렇다고 이를 개무시하는 게, 과연 맞을까. 남의 고통에 이렇게 정말 무심해도 될까.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은 무슨 악의나 큰 죄가 있어서 그런 걸까.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면, 누가 그랬을까.
우리, 눈길을 외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이제는 그곳을 떠나, 이 구름의 저편에 있는 나도 이렇게 눈이 가고, 마음이 향하는데. 같은 땅을 밟고 있는 사람들마저 그러면, 이 세계가 너무 슬퍼지지 않겠어?
무엇보다, 당신 역시 아무런 악의 없는 누군가나 시스템에 의해 상처 입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줘. 내가 외면하면, 언젠가 나도 외면 받게 될 거라는 사실도. 이건 ‘불편하지만, 잊어선 안 될 진실’이야.
생전 내게 붙었던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 ‘뉴욕 지성계의 여왕’과 같은 레떼르는 과분한 찬사였을 뿐이야. 나는 작가로서, 그리고 현실참여의 예술평론가로서,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고 기득권의 지배논리에 포섭되지 않는 마음의 목록을 지닌 사람’이길 늘 바랐어. ‘진지하자, 열정적이자, 깨어 있자!’라던 내 삶의 좌표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그래서 난 작가, 문화비평가, 연극연출가, 영화감독, 예술가, 사회운동가 등으로 끊임없이 변신할 수 있었던 거야. 시대와 세계에 문화적 스타일과 감수성의 자극을 줄 수 있었다고 평가를 해 준다니, 고마울 따름이야.
그토록 환멸 했던 부시가 곧 물러나지만, 그것으로 이 세계가 착해진다거나 나아질 것이란 섣부른 기대는 않아. 이 세계가 구축한 공고한 흉포한 질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야. 그럼에도 우리는 괴물이, 바보가, 되지는 말아야지. 비록 당신들과 함께 그 엄혹한 현실에 동참하진 못하지만, 계속 위에서 주시하고 있을게. 세계를 조금이라도 덜 슬프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바로 당신의 마음과 작은 행동이고, 난 이 말을 믿어.
불가능,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야!
(※참고자료 : 수전손택 공식 홈페이지(www.ssansontag.com), 위민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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