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드 쭌/무비일락

[무비일락(舞馡劮樂)] 금기의 사랑이 잉태한 역사의 소용돌이, <쌍화점>

낭만_커피 2009. 1. 8. 16:16


고려 충렬왕 때의 가요인, ‘쌍화점(雙花店)’은 당대의 성윤리를 대변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4절로 된 이 가요는 유창한 운율과 은유적인 가사를 갖고 있다. 조선 때는 이 노래가 퇴폐적이고 남녀상열지사라며 탄압을 받았다. 본디 ‘쌍화(雙花)’는 호떡, 만두의 뜻이란다.

그렇다면, 이 영화, <쌍화점>(감독 유하)도 미루어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왕비는 왕의 명령으로 자신과 합궁했던 무사에게 쌍화떡을 건넨다. 그리고 말한다. “고향인 원에서는 여인들이 정인에게 이 떡을 주는 풍습이 있어요.” 단 하루의 합궁, 한때 연적이었던 남자에게 빠진 왕비. 고려상열지사는 파열음을 짓는다. 노출은 기본이요, 체위(?)를 둘러싼 왈가왈부도 한창이다. <미인도>의 노출 수위를 훌쩍 넘었다거나, <색, 계>를 능가하고픈 욕심도 엿보인다는 이야기도 있다. 무엇보다 화제는 꽃미남 커플, 조인성과 주진모의 동성애 연기다. “동성애자라는 소문 때문에 좋은 작품을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조인성)는 소신까지 밝힐 정도로, 영화는 뜨겁다면 뜨겁다.


결론적으로, <쌍화점>은 동성애 영화, 아니다. 영화를 둘러싼 왈가왈부가 영화를 선택하게 만드는 발화점은 될 수 있겠지만, 그건 단순 질료 이상은 아니다. 드라마는 그 질료를 버무려 차곡차곡 전진한다. 그 속에는 관계망이 투사하는 권력과 욕망이 있고, 어쩔 수 없이 잉태되는 비극이 있다. 인물 간의 엇갈리고 흔들리는 감정이, 영화의 핵심이다. 특정인물에 감정이입을 했을 경우, 예상치 않은 기복을 야기할 수 있으니 주의할 필요도 있겠다.


고려시대의 상열지사는 새로운 느낌을 준다. 기존 사극영화(퓨전사극까지 포함한) 대부분이 조선시대에 집중했었다. 비극적인 역사를 품은 공민왕을 둘러싼 허구의 삼각스캔들도 배우들의 열연과 함께 흥미를 유발한다. 정사(正史)를 벗어나 있지만, 당시 원나라와의 정치적 관계나 사회상을 감안하자면, 얽히고설킨 관계망은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집중할 것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그들의 감정이다. 노출과 침대의 스펙터클(?)에 눈길을 빼앗기지 말고. 따지자면, 이는 치정극이다. 황당한 설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왕이 정치적 목적에 의한 후사 때문에 호위무사에게 왕비와의 대리합궁을 요구함으로써 빚어지는 욕망의 파국. 공민왕(주진모)과 친위부대의 수장 홍림(조인성)은 친구이자 연인 같지만, 그들은 어떻게든 합일이 될 수 없는 관계다. 기본적으로 지배와 피지배로 맺어진 사이이기 때문이다. 필요에 의해 왕후와 합궁을 지시한 것이 자신임에도, 왕도 결국은 감정을 지닌 존재다. 의리를 내세우다가도 질투심에 쉽게 허물어지는 것이 수컷이니까. 홍림 또한 복종의 DNA가 깊숙하게 박혀있다손, 이는 훈육된 기제다. 불두덩이처럼 이성을 불사르는 사랑 앞에 장사가 있을 턱이 있나. 감정이 흔들릴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결정이 불러 온 고려상열지사는, 금기의 사랑과 역사의 소용돌이 앞에서 덜거덕거린다. 쌍화는 ‘상화(霜花)’의 음역이다. 상화는 서리꽃. 뜨거웠지만 이내 지고 말 순간의 이미지.

그래도 <쌍화점>의 체위 수위를 묻고 싶다고? 유하 감독의 말로 답변을 대신하고 싶다.  “<쌍화점>의 노출 장면이 생각보다 약했다. 이 정도 수위를 가지고 세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한국영화가 여전히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하나 팁을 주자면, 베드신이나 동성애 장면에서 삭제는 없었다. 불황기에 에로티시즘을 앞세운 영화가 성공한다는 것은 근거 없는 속설이지만, 노출이 화제가 됐던 앞서의 <아내가 결혼했다> <미인도> 등은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초점을 어떻게 맞추든, 당신의 선택이지만, 부디 체위 따라하려고 용쓰지는 마시라. 농담이다.


시네마유람객 ‘토토의 천국’(procope.org)
영화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무비일락’은 그래서, 나온 얘기다. 그리고 영원히 영화와 놀고 싶은 소박한 꿈도 갖고 있다. “음식은 1분 만에, 음악은 3분 만에, 영화는 2시간 만에 새로운 세계를 맛볼 수 있다”는 말도 믿고 있다. 영화를 통해 사유하는 세계를 좋아한다. 그래서 내겐, 가슴 뛰는 영화를 만난다는 건, 생의 숨 막히는 순간을 만나다는 것 혹은 생을 감식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몰링'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