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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에게 한국의 깊숙한 곳을 알려주고 싶다”… '한국문화알리미' 배정렬 대표

낭만_커피 2008. 12. 28. 16:36

한국 방문한 일본 ‘HANA프레스’출판사의 배정렬 대표



“한국 문학이나 인문서, 취미 등 장르에 상관없이 좋은 책을 일본에 소개하고 한국에 대해 좀 더 깊숙한 것을 알려주고 싶다.”


일본 도쿄에서 출판사 ‘HANA프레스’를 운영하고 있는 배정렬 대표(43)가 한국을 찾았다. 지난 11월12일 방한해 12월2일까지 머물면서 한국 출판업계와 접촉하고 출판 관련 작업을 진행했다. 홍익대학교 부근의 출판사들과 파주 헤이리마을의 출판단지 등을 둘러 본 그는 일본에 알릴만한 한국의 서적에 대한 탐사도 했다. HANA프레스는 다른 출판사의 출판 기획․제작을 대신해 주면서 한국어 관련 학습서를 출판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싶다”


이번 한국방문은 다소 긴 여정을 택했다. 12월 중 나올 일본의 한국어 학습자를 위한 『쉬운 한한사전』의 인쇄를 한국에서 진행한 까닭도 있지만, 한국의 출판업계를 좀 더 알고자 하는 욕구도 있었다. 이전에는 3박4일 정도의 짧은 여정으로 한국을 방문했었다.


배 대표는 기본적으로 한국 문화를 일본에 알리고 싶다는 열정과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다. 사실 그렇다. 두 나라 사이에는 다양한 문화적인 교류가 오가고 있지만, 책을 통한 교류는 거의 일본의 독주다. 일본 문학 등의 일본 책은 한국에 쏟아져 나온다. 서점에 가보라. ‘일류(日流)’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일본 작가의 코너는 만만하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다르다. 한국은 책을 통해 일본인들과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도 우리에겐 한류(韓流)가 있지 않냐고? 일부는, 맞다. 배 대표도 한류의 긍정적인 영향을 인정한다. “한류는 (일본에서) 분명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고 선호 계층도 있다. 일본 서점에 한국과 관련한 책장이 예전보다는 조금 커지고 넓어졌다. 그러나 이는 한류 중심의 콘텐츠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한국 책장 내 문학의 비중이 컸으나 비중만 놓고 보면 문학은 그 비중이 줄어들었다. 한류가 나름대로 한국에 다가갈 수 있는 접근 통로가 됐고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류 덕분에 한국어를 공부하려는 주부나 젊은이들도 많다. 그런 한편으로 이제는 한류가 아닌 방식으로 (일본인들에게) 접근하는 것도 필요할 때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한국을 일본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까.


‘한국어저널’의 산파이자 한국을 알리는 전도사로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린 그해. 배 대표는 그 이전부터 한일 양국의 문화적인 교류를 위한 방편이 없을까 구상하고 있었다. 일본의 어학전문출판사에서 근무하던 그가 떠올린 것이 한국어학습 잡지. 회사에서는 반대가 심했다.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창간호가 적자를 내면 바로 폐간하겠다’고 설득해 <한국어저널> 창간호를 낸 것이 2002년 6월. 한일 월드컵이 열리고 있던 시기였지만, 일본 내 한류는 아직 찾아보기 힘든 때였다(일본 내 한류는 2003년 <겨울연가>가 위성방송을 통해 선보인 뒤 이듬해 NHK에서 방영되면서 본격적인 붐이 일게 됐다).


야심차게 내놓은 <한국어저널>은 그러나 초반에는 별 볼일 없었다. 발간 당일 도쿄의 유명서점에서 직접 판촉에도 나섰지만 10여부가 나갔다. 울상이었다. 편집장으로서 체면 안서는 부수였다. 그러나 구겨진 체면은 며칠 뒤, 갑자기 빳빳하게 펴졌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책을 사기 시작한 것. 창간호만 3만권 이상의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성공이었다. 


그는 하나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한류가 본격적으로 상륙하기 전,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을 확인한 것이다. 한국어는 한국을 제대로 알기 위한 가장 확실한 디딤돌이다. “언어는 한 나라를 알기 위한 큰 무기다. 그 나라를 알고 싶으면 언어를 우선 아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후 읽고,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을 알리고 싶다는 그의 생각은 한국 서적과 한국어관련 서적의 보급과 제작에 힘을 쏟게 만들었다.


그는 피천득의 ‘인연’ 등을 담은 <대역 피천득 수필집>을 내 한국의 수필문학을 일본에 알리기도 했고, 한국을 폭넓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2006년 독립했다. 이후 HANA프레스를 통해 <한국어 표현문형> <소리로 맛보는 한국어 명문 명작> <하루에 한 문장, 짧은 글로 읽은 한국어 리딩> 등의 책을 내 한국어를 좀 더 깊게 배우고자 하는 중상급을 위한 책을 내놨다.


책으로 한국과 일본을 잇는다


사실 출판에 있어서 일본은 세계 최강국 중의 하나다. 한국이 범접할 수 없을 정도다. 일본 책이 한국에 쏟아지는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스토리텔링의 저변이나 출판인구 혹은 역사 등 모든 제반여건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월등하다. 반면 한국의 작품은 일본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그 수요를 장담할 수가 없다. 일본의 출판사가 한국 책을 낸다는 것은 아직 일종의 ‘모험’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배 대표는 한국 문학 등을 비롯한 한국 책이 꾸준하게 조금씩 일본에 소개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광수의 <무정>이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과 같은 근대소설을 비롯, <태백산맥>(조정래) <너에게 나를 보낸다>(장정일) <아홉 살 인생>(위기철) <서른, 잔치는 끝났다>(최영미) <무소유>(법정스님)과 함께 최근작으로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공지영) <외딴 방>(신경숙) <칼의 노래>(김훈)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 등이 일본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고 전했다. 배 대표는 “동시대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일본 독자들이 읽을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탄탄해 뵈던 일본의 출판계도 ‘불황’에 빠져있기론 한국과 마찬가지인 듯하다. “일본은 1995년이 인터넷 원년(元年)인데, 이즈음부터 사람들이 책을 덜 읽게 된 것 같다. 특히 광고수입에 의존하는 잡지 쪽의 타격이 컸다. 단행본은 아직 100만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가끔 나오고 있다. 그래도 일본인들은 정보를 찾기 위해 책이나 잡지를 사고 편집 작업을 하고 가이드 노릇을 하는 책에 들어간 노고를 인정해 준다.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쇄매체에 대한 수요나 애정이 남아있다고나 할까.”


일본 출판계에서도 앞선 10여년의 불황이나 최근의 경기침체로 인해 실용서가 인기를 끌고 있다. 문학 분야에서는 대중문학이나 추리소설 등의 장르에 포진된 인기 작가를 중심으로 한 작품들이 주로 잘 나가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출판계의 대표적 블루칩이었던 만화도 예전만큼 잘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일본 출판계도 현재 위기감을 가지면서 답을 계속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 배 대표의 설명이다.


이에 한국의 책이 영역 확대나 위기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되진 않을까. 일본 출판계의 ‘한국 알리미’ 배 대표는 현재 다양한 구상을 진행 중이다. 이런 경험도 그의 구상에 다소 영향을 줬다. 한국에도 영화팬들을 중심으로 알려진 일본의 유명배우 ‘나카타니 미키’가 그에게 읽을 만한 한국 문학작품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선뜻 답을 못했다. 일본어로 된 문학작품이 그닥 없었던 탓이다. 그는 아직도 이것이 참 미안한 경험이라고 했다.


벌써 10여년이 됐다. 한국어 관련 서적을 만들어온 것만 해도. 이제는 시즌2가 필요한 시점이고, 그는 좋은 책을 일본에 소개하고 싶다. 한국의 책이 일본에 덜 알려졌다는 점도, 누군가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점도 그에겐 기회다. 문학 작품이나 인문서를 소개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는 한국 내 사람살이의 속살을 일본인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한국 사람들을 위한 여행이나 음식 등의 문화적 가이드북을 한국을 여행하거나 한국에 관심 있는 일본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


이에 『서울 이런 곳 와보셨나요? 100 : 당신이 몰랐던, 서울의 가볼 만한 곳(박상준 글/허희재 사진/한길사 펴냄)과 같은 책도 유심히 봤다. “일본 사람들은 가이드북을 갖고 다니면서 직접 찾아서 보는 여행 취향을 갖고 있다. 뒷골목을 거닐거나 보통 사람들의 사람살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음식도 아주 잘 알려진 데보다는 동네 구석이나 책에는 없지만 숨겨진 동네 맛집을 찾는 소소한 재미를 찾는 사람도 많다. 이것이 한국을 좀 더 제대로 알리고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한국의 깊숙한 곳을 알려주고 싶다. 구체적이고 수준 높은 책을 선보이고 싶은 생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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