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드 쭌

음악인 정재형이 건넨 말, "좀더 다른 삶을 사세요"

낭만_커피 2008. 6. 21. 23:05
음악인, '정재형'. 1990년대 중반 3인조 혼성트리오 '베이시스'부터 그의 음악을 아주 어설프게 듣고 알고 있었다지만, 열혈팬도 아니고, 그저 바람결에 흩날리는 소식만 드문드문. 베이시스가 해체됐고, 프랑스 유학을 갔고, 간간히 OST작업을 하고 있다는 정도만 바람결을 통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비슷한 시기의 뮤지션인 김동률(전람회) 이적(패닉) 유희열(토이) 등을 더 좋아라~했던 나로선 정재형은 열외의 뮤지션이었다. 정재형 솔로 1, 2집도 구매하지 않았다. 베이시스 시절의 노래만 품고 있던 그런 내게,

어느날, 예스24에서 인터뷰를 할 생각이 있냐고 묻는다. 흠. 열혈팬은 아니지만, 우선 돈이 궁했던 나로선 덥썩 'Yes~'. 앞서 이적, 김동률, 유희열 등이 속속 음반을 내고 컴백한 마당, 그들과 친하다는 정재형도 드뎌 앨범을 냈구나, 싶었다. 음악도 듣고 한번쯤 만나고 싶었다. 음악을 직업으로 갖고 있는 알려진 연예인을. 그런데 줸장, 공부해야 했다. 그냥 만날 순 없잖아. 만나기 전까지 '정재형'을 열나 검색하고 밑줄 긋고 들었다.

4월10일의 첫 만남은 신사동 가로수길이었다. 당초 약속은 서초동 호원대학교 인근이었다. 강의가 있다고 그랬다. 방송연예학부 수업. 그러나 그날 애초 휴강이었단다. 자신이 학생들에게 일찌감치 휴강이라고 해 놓고선 깜빡. 중간에 바뀐 약속장소가 가로수길 블룸&구떼. 정재형의 단골카페란다. 유후~ 덕분에 말로만 듣던 가로수길의 카페를 처음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말은 많이 듣고 가로수길을 가보긴 했으나 카페는 들어가보지 않은 터였다.

흠. 블룸&구떼. 괜찮더라. 분위기 좋고. 잡지사 기자 출신의 두 양반이 각기 영국과 프랑스 유학을 가 플로리스트 과정과 요리과정을 마치고 의기투합해 열게 된 카페라고 그랬다. 뭔 이유인지는 몰라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열풍을 타고 더욱 유명해졌고, 이나영과 배두나의 단골집이기도 하단다. 흠. 우리 나영이가 오는 시간을 알 수 있다면 딱딱 맞춰서 갈 터인데...^^;;

쨌든 이렇다. 나름 분위기 좋고, 2층 테라스에서 본 풍경도 멋지다.
 

그리고 블라블라. 2시간 이상, 3시간 약간 못미치게 떠들었다. 정재형을 처음 본 순간, 그랬다. 신화의 에릭이 정재형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뭐, 딴지 걸어도 상관없다. 내가 보기엔 그랬다는 거다. 쌍꺼풀 진 눈, 얼굴 윤곽, 둘 얼쭈 비슷하던데.ㅎㅎ 정재형, 잘 생겼다.

인터뷰. 정재형은 대체로 차분하고 나긋나긋했다. 미디어 노출을 별로 안 좋아한다더니,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다. 어느 글에선가 간혹 돌아이 같은 면도 있다던데, 블라블라 하는 동안엔 전혀 그런 그런 조짐이 없었다. 솔직히 그런 면을 좀 기대했는데. 모바일폰에 인터뷰 녹음을 했는데 아, 역시나 상태가 좋질 않다. 그의 나긋한 목소리가 녹음에는 좋지 않았던 게다. 덕분에 좀 고생 삐질삐질했다.

그런데, 역시나 난 좋은 인터뷰어는 아닌 것 같다.ㅠ.ㅠ 4월 인터뷰 이후 곧 나온다던 책이 나왔다. 이른바 '뮤지션 작가'의 대열에 동참한 셈인데, 지난 9일 상상마당 카페에서 '작가' 정재형을 초청한 북살롱이 있었다. 인터뷰어 자격은 아니고, 운 좋게 초청을 받아 갔다. 그와 4월에 블라블라하고 작별하면서 책 나오면 사서 보겠다고 했는데, 책은 사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마침 그 자리에 가니 책 한권씩을 주더라. 째수~

말이 샜다. 왜 내가 좋은 인터뷰어가 아닌고 하니, 북살롱에서의 정재형은 뭐랄까. 아까 언급했던 돌아이 기질이 종종 새어나왔다. 그 자리에 한 30명 이상이 온 것 같긴 한데, 정재형은 흥미롭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기괴한 웃음소리도 덧붙이고 언어유희도 곧잘. 젠장 좌절. 나랑 블라블라 할 때는 글케 조근조근 하더니. 뭐, 일말의 넝담이고, 그는 생각보다 재미난 사람. 책은 벌써 4쇄란다.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도 올랐네.ㅎㅎ 프랑스문화의 근간은 인문학이라는 사실도 간파한 파리의 유학생, 정재형.

그날 북살롱에서 편하게 그의 얘기를 들으니, 인터뷰 할 때보다 훨 나았다.
정재형의 말 중에서, 현재의 내가 가장 강렬하게 흡수했던 건 바로 이것.
"좀더 다른 삶을 살라."
오호, 지금의 내 처지 아닌가.
으레 그 나이, 그때 즈음이면 해야 하는 그런 것 말고.
줄을 그어놓고 그 라인에 서서 율법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그런 것 말고.
그러기 위해서 지난 세월과 굿바이를 청한 것 아니겠나.
물론 힘들지. 불편하지. 고민도 많지.
그래도 다르기 살기 위해 택한 길. 나는 Running 중. (이번 3집 앨범 중 나는 'Running'를 가장 좋아한다. 그녀를 향해 숨가쁘게 뛰어가던 그날의 영상이 떠올라서...^^; )

그런 내게, 정재형이 위안을 줬다. "세상에는 충분히 다른 많은 인생이 있는데 우리는 한 가지만 보고 사는 게 아닌가 싶어요. 좀더 다른 삶을 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달라서 힘든 것도 있겠지만 한가지만 보고 살지 말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있다면 하세요. 다른 길을 간다면 박수를 치겠습니다."

짝짝짝. 그래서 나는 박수 받아 마땅한 사람.^^;;;
하하. 고맙습니다. 꾸벅. ^^;;;

정재형은 또한 그런 말을 건넨다. '나 다움'이 중요하다고. 나의 정체성을 가장 쉽게 보여줄 수 있는 일, 스타일에도 자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작가' 정재형과의 대담이 끝나고 사인을 받는 시간. 생각과 달리, 정재형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하지 못할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하하. 고맙단 말을 건넸다. 정재형은 살짝 웃었다.

그날 책을 무려, 세권이나 받았다. 1권은 빌려준 책을 돌려받고, 1권은 책 빌려준 친구가 사준 책, 마지막 1권은 ≪정재형의 Paris Talk : 자클린 오늘은 잠들어라≫. 그 책들과 함께 집으로 가는 길. 다른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달라서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응원해주는 사람도 있잖은가. 별들도 나를 지켜봐주고 있었고,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도 생겼지 않은가. 그래, 고맙소, 재형이 형.


012345678910

* 아래는, 예스24의 채널예스에 실린 글의 원본.


“소외 받고 외로운 너에게 보내는 노래”

[인터뷰] 3집 앨범 [For Jacquline]과 첫 번째 책 《Paris Talk》를 낸 ‘정재형’


누군가는 “오빠가 돌아왔다”고 외쳤다. 혹자는 “기쁘다. 정재형 오시네~”라고 노래를 불렀다. “어린 시절엔 고급스러운 우울함 때문에 공감하기 힘들었다”던 또 다른 누군가는 이번 앨범을 “기본의 우울하고 클래식한 정서는 그대로 한 채 전공을 최대한 살려 스토리와 그림을 입혔고, 좋은 동료들을 만나 새로운 장르에 도전도 해 본 그런 앨범”이라며 반가움을 표했다. 그래서일까. 이런 상찬도 눈에 띈다. “좋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기쁜 거다. 듣는 사람으로서.”